[책 속 명문장]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마르크스의 귀환』
[책 속 명문장] 누구나 아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마르크스의 귀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7.21 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춥고, 비 내리고, 스산한 날이었죠. 남편이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지만, 아이가 넷이라고 하는 순간 다들 난색을 드러냈답니다. 마침내 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방값을 치르고도 가진 침대를 전부 급히 처분해야 했어요. 압류 소문에 놀란 약국, 빵집, 정육점, 우유 가게에서 외상값 청구서를 들고 쳐들어왔거든요. (중략) 부인께 저의 진심 어린 애정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당신의 어린 천사들에게도, 가슴에 젖먹이를 안고 많은 눈물을 떨군 어미 한 명을 대신해 입맞춤을 전해주세요.<94~96쪽>

“이보시오!” 문을 벌컥 열어젖힌 마르크스가 홀로 있던 빵모자에게 말했다. “얼마 안 가 철로가 끊길 거요! 서둘러요!” 놀랍게도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겨우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점심시간인데요.” 마르크스는 그 태만한 인간을, 다음으로는 창밖으로 닥쳐오는 파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156쪽>

단순히 원고를 끝내기만 하는 건 더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가 처한 곤경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사탄의 배꼽, 다른 말로 하자면 중력 없는 중심이었다. 그의 책은 지하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제시해야 했다. 동맹의 파열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방편으로. 그의 책은 그때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것, 즉 부르주아 정치경제 체제를 대상으로 급진적인 비판을 개진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경제, 즉 프롤레타리아 경제와 그것을 운영할 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류의 등장을 준비해야 했다.<332~333쪽>

세계는 변화에 준비가 됐을까? 상관없었다. 그건 이미 거기 있다. 그냥 전보다 더 많이. 골분쇄 공장은 여전히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고, 더 많은 보트가 웨스트민스터 다리 부근의 좁은 구역을 차지하려고 경쟁했다. 더 많은 공장이 주황색 그을음을 대포처럼 쏘아올렸고-그는 갑작스러운 포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더 많은 원재료가 완제품으로 제조되었다. 기본적으로, 전보다 더 많이.<420쪽>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그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자신이 하고 있던 말과도 배치되었지만, 실은 자신이 그 이야기를 이미 천 번도 넘게 마음속으로 연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르시겠어요?” 마르크스가 소리쳤다. “아버지를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니에요! 노동자들을 위해 썼어요. 혁명을 위해서요!”<454쪽>

『마르크스의 귀환』
제이슨 바커 지음│이지원 옮김│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펴냄│464쪽│19,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