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젠더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당신의 ‘젠더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7.2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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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말조심에 관한 여러 사자성어 중 하나이다. 최근 사회지도층의 잇단 성추문은 언행의 조심성을 상기하게 한다. 특히 상대방에게 성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언행은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데, 내가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내뱉은 말과 아무런 의미 없이 한 사소한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살 많이 빠졌네. 살 빠지니까 훨씬 예뻐(잘생겨) 보여!”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분명 친구를 기분 좋게 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에는 “계속 그러한 외모를 유지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모를 평가하는 듯한 분위기의 말은 그것이 나쁜 의도이건 좋은 의도이건 해서는 안 된다.

‘애인의 유무’를 묻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에게 남자친구를, 남자에게는 여자친구의 유무를 물어본다. 하지만 이는 상대방을 ‘이성애자’로 규정짓는 것으로써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당사자가 동성애자라면 당연히 위와 같은 질문은 상처가 될 수 있다. 굳이 물어보고 싶으면 ‘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애인의 유무는 사생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얘기하지 않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그리고 ‘남자는 ~하다’ ‘여자는 ~하다’는 식의 화법도 옳지 못한 표현이다. 특히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 등은 대표적인 성별 고정관념에 의한 표현이다. 여성적, 남성적이라는 표현에는 여자(남자)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돼 있다. 가령 여자는 남자보다 섬세하고 꼼꼼하다는 것. 남자는 기본적으로 의리가 있고, 여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 자고로 여자는 조신해야 하며 남자는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것 등이 그렇다. 그건 성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개인 차이일 뿐이다.

또한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보다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양성평등은 여성과 남성이 아닌 성들을 배제하는 표현이다. 책 『성소수자_LGBT(Q)』에 따르면, 성에는 생물학적 성과 성적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 자신이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느끼는 ‘무성’(無性), 스스로 일부는 남성이고 일부는 여성이라고 느끼는 넌바이너리(non-binary) 등이 있다. 자신을 위와 같은 성적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이들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보다는 젠더 스펙트럼이 넓은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옳다.

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의 저자 이나영의 표현을 빌리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의식, 행동, 평가기준, 사회질서, 문화, 분배구조, 정치적 기회 등에 의구심을 가지고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다.

혹시 “그럼 그냥 입을 닫아야겠네?”라며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바에는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원래 말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말이란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뱉어야 한다. ‘보편’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많은 차별과 혐오를 양산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간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고 행동했다. 이제부터라도 ‘어렵게’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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