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빼고 삶의 변화를 논하지 마라
‘메모’를 빼고 삶의 변화를 논하지 마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7.20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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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편지' [사진= 인스타그램]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살아오면서 처음 겪게 되는 소중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돼서 기사님께 감사하네요. 삶이란… 제게 아주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 펜보다는, 핸드폰을 만지는 손가락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기사님 덕에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NS에서 ‘길 위에 쓴 편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수많은 메모들에는 이런 글들이 적혀있다. 이 메모들은 한 택시 기사가 일으킨 특별한 파장이다. 서울 곳곳을 다니는 이 택시 기사는 승객의 목적지를 물은 후 특이하게도 노트와 펜을 건넨다. 그리고 승객은 그곳에 아무 말이나 메모한다. 스마트폰만 바라보던 눈을 메모장으로 돌리고, 펜으로 무언가를 써나간다. 단순히 메모할 뿐이지만, 그러면서 행복해한다. 그들의 인생에서 뭔가가 변화한 것이다. 

메모: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하거나 자신의 기억을 돕기 위해 짤막하게 글로 남김.

메모 전과 후, 무엇이 달라진 걸까. 20년간 방송작가로 활동한 이윤영 작가는 책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에서 메모가 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말한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아무 글이라도 매일 적는다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먼저, 메모는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을 찾게 한다. 사진을 찍어봤다면 알 것이다. 사진기를 든 사람은 무엇을 찍을지를 살피며 의식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찾게 돼 있다. 메모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쓰기 위해서는 쓸 만한 것을 골라야 한다. 그 선별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들이 드러난다.   

‘무엇을 메모할 것인가’는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와 다르지 않다. 사진을 찍을 대상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는 것처럼, 메모를 하다 보면 어떤 것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가령 당장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하나를 꺼내서 그 사진에 대해 뭔가를 메모해보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특히 음악이나 그림을 하나 고르고, 그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 생각한 후 그 내용을 가볍게 적어보자. 예술작품을 보고 메모를 남기면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아진다. 그저 ‘좋다’ ‘멋지네’라는 말만 되뇌었던 예술작품도 좀 더 꼼꼼히 보게 되고, 자신만의 해석이나 관점을 입히게 된다. 어려울 것 없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예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영하와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수전 손택, 『전쟁과 평화』의 저자 레프 톨스토이는 대단한 메모광이다. 특히 톨스토이는 성경 등 책의 여백에 연필로 빼곡히 메모한 것으로 유명하다. 손택의 책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는 1964년부터 1980년까지 그가 한 메모의 기록이다. 

메모는 또한 복잡한 세상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행위이기도 하다. 메모는 ‘나’라는 거름망으로 세상을 걸러내는 행위다. 이전의 세상에서 나를 느끼지 못했다면, 메모를 하면서 자신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메모가 한 장 두 장 모이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고, 무의미하게 그냥 지나가던 시간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토크쇼 ‘대화의 희열’에서 유시민 작가는 ‘인생의 의미’를 묻는 가수 유희열의 질문에 “인생에는 원래 의미가 없어요. 그저 사는 우리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지”라고 답한다. 메모를 통해 깊이 사고하고 나 자신을 찾고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삶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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