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의도했든 “죽음은 답이 아니다”
무엇을 의도했든 “죽음은 답이 아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7.16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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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할 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 인간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관에 누운 이를 바라보며 그의 지난 삶을 회상한 후, 그 시선을 거둬 자신을 비출 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무거운 질문이 가슴팍에 날아와 꽂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명인의 부음(訃音)이 잇따라 들려왔다. 일제강점기에 만주군(일본군)에 소속됐다가, 해방 정국에서 육군 장교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전쟁 영웅’으로 거듭난 역전 용사의 죽음부터 인권 운동가로 평가받는 어느 남성 정치인의 죽음까지. 두 죽음의 공통점은 죽음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이다. 전자는 친일부역자의 과(過)를 지녔지만 전쟁 영웅의 공(功)을 세운 군인, 후자는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힘썼지만, 그 죽음이 성범죄와 연관됐다는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두 사람의 공과 과를 상쇄해 그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그들을 ‘친일파 역적’ ‘성범죄자’로 비난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쟁 영웅’ ‘인권 운동가’로 추켜세웠다.

각기 다르게 평가받는 이들의 죽음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바른 삶은 무엇인가’ ‘그런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두 사람은 분명 성공한 인생이다. 인생의 굴곡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굴곡 일부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삶이었다. 사실 ‘어떻게 사는가’하는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이름을 남겨도 되고,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훌륭한 사람이 아닌 (긍정적인 방향으로) 되고 싶은 사람’이 돼도 무방하다. 다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는 나름의 정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자살 금지’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한 두 인물의 삶은 대비된다. 전자는 수명이 다하기까지 과오에 공을 덮어 만회를 꾀했지만, 후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범죄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해명을, 삶의 어려움이 있다면 극복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만회는 요원한 일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런 이유에서 (후자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고소인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용서하고 싶었다. 사과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저의 존엄성을 헤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 죽음, 그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사건은 피고소인의 죽음으로 실체 파악이 요원해졌다. 피고소인이 사망할 경우 법은 처벌 대상이 부재(공소권 없음)한 것으로 간주해 사건을 종결하기 때문이다. 고소인에게는 피고소인이 처벌받는 것만큼이나 본인이 당한 피해를 명확히 밝히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인데, 피고소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고소인의 피해자 진술과 고소인을 향한 2차 가해만 남게 됐다. 피고소인의 죽음과 성추행과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정세랑 작가가 소설 『시선으로부터』에서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중략)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고 말한 상황이 벌이진 것이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건 여러모로 유익하다. 이와 관련해 김영민 교수는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했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돼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죽음을 실행하는 건 다른 문제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의 성범죄 의혹을 두둔하는 쪽도, 비판하는 쪽도 그의 이른 죽음을 ‘잘한 행동’ 내지 ‘좋은 해결책’으로 보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자살한 나오코의 룸메이트였던 레이코는 나오코의 연인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 어떤 아픔을 느낀다면, 그 아픔을 남은 인생 동안 계속 느끼도록 해. 그리고 만약 배울 게 있다면 거기서 뭔가를 배우도록 (해)”라고 충고했는데,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남긴 죽음의 상흔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 ‘죽음은 답이 아니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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