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치매간병을 힘들게 만든 건 착하며느리 증후군이었다" 
[리뷰] "치매간병을 힘들게 만든 건 착하며느리 증후군이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7.07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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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큰아이 입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10년 이상 제대로 된 여름휴가 한번 다녀오지 못한 삶에 지쳐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운명은 참으로 얄궃었다. 이상행동을 보이던 시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치매 판정을 받았고, 그렇게 며느리인 저자는 주보호자가 됐다. "그들은(시어머니와 그 자녀들) 결국 내가 하게 될 일임을 나보다 먼저 알고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없는 것처럼 가정 케어로 결정"했기 때문에. 
 
치매 환자 수발은 체력·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차려오라는 성화에 밤낮없이 들어야 하는 똥·오줌 수발은 감내하기 힘든 수고였지만, 사실 더 힘든 건 주변인의 태도였다. 시어머니와 그의 여러 자녀는 저자의 수고에 진정으로 감사하지 않았다. "불쌍한 배우자로 비춰지길 원"하는 시어머니는 친구들이 방문할 때마다 아버지를 보여주길 원했지만, 사실 그런 수고를 감당하는 건 며느리의 몫이었다. 주위에서 시아버지의 변 뒷처리를 하는 며느리를 칭찬할 때면 시어머니는 "재는 맨날 코가 막힌대요. 그래서 냄새도 안 나나봐. 그러니까 저렇게 주무르지"라고 말해, 간병의 수고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간주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주위의 칭찬이 힘이 됐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분들도 좋은 뜻으로 하는 말(효부)이었겠지만, 정작 나는 마음이 괴롭다. 마치 나에게 '계속 효부가 돼야만 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에"

매일 같이 '오늘 하루만 버티자'며 버텨낸 세월이 자그마치 6년, 시아버지와 치매센터 수업에 다녀오던 어느 날, 저자는 난생처음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가출을 시도했다. 인정받고 사랑받길 원했으며, 그렇게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키워"나가던 저자는 "그들은 나에게 '효부' 명찰을 멋대로 달아줬고, 이제 그들 맘대로 낙인을 찍어놓았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착함'을 내려놓으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게 됐다. 

저자는 "(시부모님 집에서 나와) 이사 1년이 지난 지금 (시아버님은) 입주 요양보호사와 살고 계신다. 원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미루고 미뤄왔던 자유로운 휴식을 결혼(26년 차) 후 처음으로 가질 수 있게 됐다. 몇 년을 미루던 자궁의 혹 수술을 했다. 화장실을 마음 편히 갈 수 있게 됐고, 밤새 깨어나지 않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이젠 차가워진 밥을 급하게 퍼넣지 않아도 된다. 제때 맞춰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혼 26년 만에 온전히 나를 마주 보게 됐고, 과거를 떠올리며 아파하는 나에게 본인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힘과 위로를 주신 분의 권유로 이 글을 쓸 요기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각자의 가정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 그 사연을 외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지만, 때로는 그런 환부를 드러내는 과정이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아픔과 상처의 기록이 무겁게 읽히는 책이다. 

『그래도 함께여서 좋다?』
정유경 지음 | 노드미디어 펴냄│31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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