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연과 인위의 전쟁, 그리고 야생의 말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뷰] 자연과 인위의 전쟁, 그리고 야생의 말 『달 너머로 달리는 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7.0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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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자연과 인위를 상징하는 두 세력이 격돌하고 그 모습을 말이 지켜본다.”

작가는 초(草)나라와 단(旦)나라의 전쟁을 통해 자연과 인위의 싸움, 즉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세력과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의 전쟁을 그려낸다. 초나라는 그 이름(초나라의 왕은 木이다)에서부터 자연을 담고, 단나라 역시 그 이름(旦은 ‘밤을 세우다’라는 의미가 있고, 단의 왕은 온 세상을 하나로 아우른다는 의미의 ‘캉’이다)에서부터 인위를 담는다.

이야기 곳곳에서 자연과 인위의 비교는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단은 성벽과 탑, 비석을 높게 쌓는 반면, 초는 평평함을 숭상하고, 단은 그 장례풍습에서 삶과 죽음을 통제하려는 반면 초에서의 죽음은 그저 자연으로의 회귀다. 단이 문자를 귀하게 여기는 반면 초는 문자는 온전한 실체를 나타내지 못하는 허상이라고 여긴다. 가령 어떤 산은 시시각각 그 색이 바뀌는데, 초는 그 산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 한편, 단은 백산(白山)이라고 규정해 인위적으로 자연의 색을 가둬버린다. 

“말들은 두 눈 사이가 멀고, 두 눈이 제각기 다른 쪽으로 열려 있어서 머리를 돌리지 않아도 밤하늘이 한꺼번에 보였다. 빛과 어둠이 말들의 몸속에 가득 찼다.” 
     
책에는 먼 옛날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 야생마의 후손들이 나온다. 자연과 인위의 전쟁을 이 말들이 지켜본다. 인간과 같이 두 눈이 앞으로 향한 것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쪽으로 열려 있기에 그들은 자연히 양쪽을 바라볼 수 있다. 

이 말들은 또한 자연과 인위가 섞여 있는 동물이다. 인간이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잡으면 말은 인간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면 재갈을 벗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소설에서 야백(夜白)이라는 말은 말 중의 말 ‘비혈마’의 후손으로, 재갈을 물고 전쟁에 참여하지만, 주인이 죽자 스스로 어금니를 뽑아 재갈을 뱉는다. 그리고 자연의 시원(始原)을 간직하고 있는 백산으로 향한다. 비혈마의 후손답게 야백은 피를 뿜으며 달 너머로 달리는데, 이 장면은 곧 인위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이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파람북 펴냄│272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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