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과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반전 매력
‘인간수업’과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반전 매력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7.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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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두 인기 드라마 ‘인간수업’과 ‘사이코지만 괜찮아’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드라마들에서의 남주인공(이하 남주)과 여주인공(이하 여주)의 역할이 이 두 드라마에서 180도 바뀌어 있다. 여주가 남주처럼, 남주가 여주처럼 말하고 행동하자 드라마의 클리셰는 계속해서 파괴된다. 

“아 배뀰 패스 xx 안 해, 진짜!”
‘인간수업’의 여주 배규리(박주현)의 첫 등장 신이 인상적이다. 규리가 남자들과 학교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다가 거칠게 넘어진다. 그리고 골을 넣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머리를 싸매고 짜증을 낸다. “xx 안 맞네. 야! 왜 거기서 공을 주냐?” 패스한 남자를 때릴 기세로 항의하더니, 결국 일어나 골을 넣고 환호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교실 창문 너머에서 누군가 아련하게 보고 있다. 규리를 짝사랑하는 남주 오지수(김동희)다. 그는 골을 넣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규리를 수줍게 바라본다. 

[사진= 넷플릭스]

“우리 사귀어. 건들지 말라고, 오지수는.”    
규리는 또 일진 곽기태(남윤수)가 지수를 괴롭히자 불량스럽게 다가가서 협박한다. 그리고 “따라와”라고 말하며 지수를 끌고 간다. 마치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박신양)가 강태영(김정은)에게 “얘기야 가자”라고 말한 뒤 끌고 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한기주가 재벌 2세여서 무서울 것이 없었듯, 규리는 운동부와 친하기 때문에 학교 일진조차도 그를 건들지 못한다. 규리는 드라마 내내 그렇게 아무 말 못 하고 당하기만 하는 지수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   

소위 멋있는 역할은 규리가 다 하고, 지수는 그저 규리에게 끌려다닌다. 규리는 폭력적이고 외향적이며, 지수는 비폭력을 지향하며 내성적이다. 지수는 규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규리는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해결한다. 다른 드라마들과 정반대다. 그러나 규리가 남자라고, 지수가 여자라고 상상하면 드라마는 밍밍해진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여주 고문영의 첫 등장 신은 상징적이다. “문영아 제발, 옷은 TPO에 맞게, 타임, 플레이스, 어케이전…” 유명 동화작가인 문영은 출판사 대표 이상인(김주헌)이 자신을 가르치려 들자 스테이크를 썰던 날카로운 칼로 접시를 긁어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문영의 기세에 백기를 든 상인은 문영을 가르치는 일을 중단하고, 문영은 대사를 이어간다. 

“내가 왜 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지 알아? 칼이, 죽여줘.” 문영은 칼이 탐난다며 그대로 가지고 나가버리고, 상인은 식당 직원의 입막음을 위해 뇌물을 준다. 다른 드라마들에서 최종 결정권자, 즉 칼자루를 쥔 쪽이 보통 남주라면,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여주이며, 여타 드라마에서 남주가 벌인 일을 뒤처리하는 쪽은 보통 여성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항상 여주가 사고를 치고 남성이 그것을 무마한다.    

[사진= 넷플릭스]

남주 문강태(김수현)와 문영이 처음 만나는 신도 신선하다. 문영은 병원 금연구역에서 꽃잎을 뜯으며 당당하게 담배를 핀다. 병원의 보호사인 강태가 “담배 좀… (꺼주세요)”이라고 말하자 돌아오는 답은 “이거 돗대인데”이다. 그리고 문영은 강태가 들고 있던 종이컵에 담배꽁초를 버린다. 다른 드라마들에서 규칙을 어기는 쪽이 남주라면, 이 드라마에서는 외양적인 여주가 규칙을 깨고, 내향적인 남주가 눌러 참는다.   

“예쁘네, 탐나. 나랑 놀자. 사랑해.”
‘인간수업’과 마찬가지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소위 먼저 들이대는 쪽은 여주다. 문영은 다른 드라마의 여주들과 달리 사랑에 대해서 이것저것 따지며 계산하지도 않는다. 이는 다른 드라마의 남주들과 같은 사랑법이다. 카메라의 시선도 정반대다. 일반적으로 성적 대상화가 되는 쪽은 여주의 몸이지만, 문영이 샤워하는 신에서 카메라는 문영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지 않는다. 반면, 강태가 윗옷을 벗고 있는 신에서 문영의 눈은 강태의 복근과 가슴을 훑고, 카메라 역시 문영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간수업’과 마찬가지로, 남주가 곤란에 처하면 여주는 백마 탄 공주(?)처럼 나타나 남주를 곤란에서 벗어나게 한다. 다른 드라마들에서는 보통 여주가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해 있고 남주에게는 도움을 줄 능력이 있지만, 두 드라마는 정반대다. ‘인간수업’의 규리는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며, ‘사이코이지만 괜찮아’의 문영은 궁전 같은 대저택을 소유하고 비싼 차를 몰고 다닌다. 반면, 지수는 부모 없이 혼자 살며, 설상가상으로 도박꾼인 아버지는 그가 번 돈을 훔쳐 도망친다. 강태는 지체장애가 있는 형을 홀로 부양하며, 정착하지 못 하고 1년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사연이 있다.

이렇게 남주와 여주의 역할이 바뀌어 있는 두 드라마가 흥행한다. 무엇보다 신선하다는 평이다. ‘인간수업’은 지난 4월 공개 후 넷플릭스에서 수 주째 1위를 차지했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지난달 20일 첫 방영 후 네이버 국내드라마 일간검색어 순위에서 수 주째 1위다. 여주와 남주의 역할이 바뀌면서 계속해서 클리셰는 파괴되고, 그에 따라 전에 본 적 없는 신선한 장면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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