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제3차 페스트 팬데믹과 동아시아 『페스트 제국의 탄생』
[포토인북] 제3차 페스트 팬데믹과 동아시아 『페스트 제국의 탄생』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6.25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이 책은 19~20세기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제3차 팬데믹(세계적인 유행)을 계기로 서구 열강과 동아시아 각국이 의학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의과학 지식을 어떻게 구축하고, 그 지식이 국가건설과 방역체계의 수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있다.

타이핑산 페스트 유행지구에서 방역활동 중인 영국군 경보병대

1894년 5월 10일, 로빈슨 총독은 홍콩의 페스트 유행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청결국 회의를 소집했다. 청결국의 책임자는 화민정무사 로카르트였다. 식민지 위생행정의 총책임자는 식민지 의관인 아이리스였으며 실무책임자는 로손이었다. 로손은 페스트가 발병하자 감염환자의 병원선인 히게이아로의 격리, 호구검역, 소독 등 강력한 검역조치를 주장했다. 반면 청결국 위원인 호카이 등은 공권력을 동원한 강력한 검역조치가 중국인들의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38쪽>

홍콩 세균학연구소(현 홍콩의학박물관)

1906년 3월 15일, 세균연구소가 개소돼 일상적인 세균검사와 연구업무가 시작됐다. 세균연구소는 레이와 오렌지 두 사람이 디자인했다. (중략) 모든 건물은 적벽돌과 석회 모르타르가 사용됐고, 외부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이음새를 발랐다. 주 건물의 내부는 석고를 사용했고, 부속 건물은 내부 이음새에 석고를 발랐다. (중략) 세균연구소는 이러한 기초설비를 바탕으로 시체부검, 백신개발, 세균검사 등을 이상적으로 결합시켰다. 이러한 공간구성은 세균설로 도시공간을 관리하려고 했던 헌터의 의도를 현실화하는 것이었다.<60~61쪽>

만주지역 철도상황과 만주 페스트의 확산 경로

특히 19세기 말 중국 동북부와 일본 등지에서 페스트가 지속적으로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와 통감부 역시 페스트의 유행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시기 동안 페스트로 인한 우려할만한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중국 동북 지역에서 페스트가 폭발해 최소 4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던 1910~1911년 시기에도 조선에서 페스트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입된 콜레라가 식민지 조선에 맹위를 떨쳤던 것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 페스트가 발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221쪽>

『페스트 제국의 탄생』
신규환 지음│역사공간 펴냄│336쪽│18,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