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편견·차별·억압에 맞선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포토인북] 편견·차별·억압에 맞선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24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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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라비니아 폰타나, 앙겔리카 카우프만, 로자 보뇌르… 위대한 걸작을 남기고도 미술사에서 이름이 누락된 여성 스물한명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여성에게 강요된 전통적 성 역할을 걷어차고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매진한 분야도, 태어난 시기도, 살았던 장소와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자신 앞에 놓인 역경, 편경, 모순을 넘어서 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 르네상스부터 현대 미술의 태동까지 여성 거장들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엘리자베타 시라니,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포르티아', 1964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엘리자베타 시라니,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포르티아', 1964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포르티아' 역시 여성 영웅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포르티아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인물이다. 시라니는 포르티아의 에피소드를 알 만큼 고전 문학에 대해 해박했다. (중략)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은 이 그림이 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포르티아는 그림 왼쪽 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대조적이다. 남성 영웅화와 마찬가지로 용감하고 강인한 여성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포르티아의 훤히 드러난 허벅지, 옷이 흘러내린 어깨는 에로티시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뾰족이 서 있는 칼, 뱀을 연상시키는 두건은 가학 피학성의 성애적 요소도 엿보인다. <50~51쪽> 

요한 조파니,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 1772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요한 조파니,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 1772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이 그림은 1768년 설립된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누드 실기 수업에 참석한 회원들의 집단 초상화이다. 당시 앙겔리카 카우프만과 메리 모저는 아카데미 창립 회원이었다. 여성이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은 명백한 진일보였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누드 데생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아카데미 누드 데생 수업을 묘사한 이 그림에도 벼에 걸린 초상화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상황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만, 요한 조파니가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해도 극심한 성차별이 만연했다. <69쪽> 

앙겔리카 카우프만, '자화상', 1780~1785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앙겔리카 카우프만, '자화상', 1780~1785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그림뿐 아니라 성악에도 재능이 뛰어나 이미 10대에 가수로 데뷔한 그녀는 오페라 가수와 화가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지만, 결국 더 험난했던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미술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내, 어머니로서만 살았던 여성들의 보편적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행운이 따랐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녀 자신의 재능과 사교적인 성격, 주변의 도움, 아버지의 헌신적 지원이 3박자를 이뤄 성고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75쪽> 

라비니아 폰타나, '스튜디오의 자화상', 1579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라비니아 폰타나, '스튜디오의 자화상', 1579년. [사진=도서출판 은행나무] 

폰타나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뒷바라지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여성이 직업을 갖기 어려운 데다 결혼 후에는 가사와 육아에만 종사해야 했던 현실을 감안할 때, 폰타나에게 결혼은 화가로서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아버지는 고심 끝에 딸보다 훨씬 재능이 떨어지는 화가 파올로 자피와 폰타나를 결혼시켰다. 장인의 바람대로 자피는 가정적이었고 열한명의 아이를 양육하는 데 헌신적이었다. 덕분에 폰타나는 계속 그림을 그리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던 약 500여년 전, 이 부부는 아내와 남편의 성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삶을 살았던 것이다. <122쪽>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펴냄│304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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