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은 어째서 시위대의 도구가 됐나?
케이팝은 어째서 시위대의 도구가 됐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6.25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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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미국에서는 케이팝의 정치적 영향력이 연일 화제다. 인종 차별 반대 시위대(이하 시위대)가 SNS에서 시위를 반대하는 게시글을 케이팝 콘텐츠를 이용해 무력화하고, 역시 케이팝 콘텐츠를 사용해 경찰의 시위 진압을 방해하는가 하면, 케이팝 팬들은 시위 자금을 대고,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유세장을 텅텅 비게 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최근 각종 SNS에 시위대의 구호인 ‘BLM(Black Lives Matter,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에 맞서 ‘WLM(White Lives Matter)’ 해시태그를 담은 게시글들이 올라오자, WLM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의 케이팝 영상(팬캠)과 사진을 WLM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WLM과 관련한 인기 게시글은 대부분 케이팝 관련 게시글이 됐다. WLM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케이팝 콘텐츠로 묻어버린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댈러스 경찰이 불법 시위 영상을 제보하는 앱을 공개하자 시위대는 해당 앱에 케이팝 영상을 대량으로 업로드해 앱이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게 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시위대 측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자 팬클럽 아미가 같은 액수를 모아 기부하는 등 케이팝 팬들의 기부도 진행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클라호마 대선 유세장에 100만명 이상이 운집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유세장에는 고작 1만9,000명이 참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집회 티켓을 예매하고 실제로는 참석하지 않은 케이팝 팬들이 이러한 ‘노쇼’ 사태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저 대중음악일 뿐인 케이팝이 어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렇게 정치적으로 변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케이팝이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케이팝은 ‘비주류, 소수자, 다양성’을 대변한다. 가령 미셸 조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케이팝이 북남미에서는 서브컬처이고,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팬들이 많다고 평했다. 신라영 미국 루이스앤클라크대 박사는 한 논문에서 “외국 팬은 케이팝을 퀴어(성소수자) 텍스트, 퀴어 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해외 연구자들도 이에 주목하는 경향이 높다”며 “케이팝이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팬들을 적극 대변하지는 않지만, 이성애 규범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아 이들에게 상대적 안정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케이팝이 부상한 시점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인데, 트럼프의 백인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이 다양성 추구로 나타나면서 케이팝이 주목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며 일어난 시위대에게 케이팝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이 시위대의 도구가 된 이유는 무엇보다 시위의 주도 세력이 케이팝을 즐기는 Z세대라는 데 있다.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후속 세대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 초반 사이에 태어나 현재 10대에서 20대 중후반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포노 사피엔스’라고 불릴 정도로 스마트폰에 익숙하다.   

Z세대 중에 케이팝 팬들이 많은 이유는 이들이 다양성이 강한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어려서부터 흑인은 물론 아시안,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수업을 들으며 자랐다. 실제로 2015년 미국의 18세 이하 인구의 48.5%가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로 구성돼 있다. 다양성이 당연하고 소수자가 소수가 아닌 곳에서 생활했던 이들에게 조지 플로이드 사망은 비단 나와 다른 이의 죽음이 아니었을 테고, 케이팝 역시 먼 나라의 음악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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