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전함 포템킨’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전함 포템킨’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6.21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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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몽타주’(montage)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 뜻을 흔히 ‘용의자의 얼굴 사진’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맞습니다. 몽타주는 ‘모으다’ ‘조합하다’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monter’에서 유래했는데, 범죄 수사에서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모으고, 조합해 그린 사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몽타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몽타주는 영화의 ‘화면 편집’을 뜻하는 용어로, 제각기 촬영한 화면을 일련의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모으고, 조합해 새로운 장면과 의미를 창출하는 일을 말합니다. 서로 배치되는 주장이 충돌해 더 높은 차원의 주장으로 합쳐지는 과정을 일컫는 정반합의 논리처럼 말이죠.

B->A
C->A
D->A

몽타주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주힌 실험’입니다. 소련의 영화감독 레프 쿨레쇼프는 무감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주힌의 얼굴(A)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그 전에 수프가 담긴 그릇(B), 관 속에 있는 소녀(C), 소파에 누워 있는 여인(D)의 이미지를 차례로 배치합니다. 도식화하면 B->A->C->A->D->A가 됩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똑같은 모주힌의 얼굴(A)이 선행하는 이미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배고픔(B), 슬픔(C), 기쁨(D) 등의 감정으로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똑같은 장면이라도 어떻게 편집되느냐에 따라 색다른 의미와 정서적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쿨레쇼프 효과입니다.

모주힌 실험은 장면과 장면의 충돌이 새로운 의미를 빚어낸다는 소비에트 몽타주 원리의 출발점이 된 실험이었습니다. 일부 영화감독들은 장면 내의 구성이나 카메라의 움직임보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성, 거기서 나오는 역동성을 중시했고, 주로 편집의 효과와 이미지 혹은 장면의 나열과 병치에 의한 의미산출에 집중했습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조금 어려우신가요? 또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라는 글에서 한자(漢字)를 통해 몽타주의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물(水)의 그림과 눈(目)의 그림을 결합하면 ‘울다’(水+目=泪 : 눈물 루)가 된다. 문(門)의 그림 속에 귀(耳)의 그림을 넣으면 ‘듣다’(門+耳=聞 : 들을 문)가 된다. 이것이 바로 몽타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에이젠슈테인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글자가 만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한자의 원리가 몽타주의 원리와 유사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정확하게 우리가 영화에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다시 말해서 묘사적이며 의미상으로 단일하고 내용상으로 중립적인 장면들을 조합해서 지적인 내용과 계열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 영화 <전함 포템킨> 스틸컷

세계영화사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1925)에서도 몽타주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이젠슈테인은 이 영화에서 ‘엎드려 있는 사자상’ 장면과 ‘우뚝 서 있는 사자상’ 장면을 연속적으로 편집해 러시아 황제의 독재에 항거하는 군인들과 민중들의 봉기를 우회적으로 암시했습니다. 이는 몽타주의 여러 종류 중 ‘지적 몽타주’에 해당합니다. 지적 몽타주는 극의 흐름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상징적인 의미를 유추하도록 하는 몽타주 기법입니다.

책 『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의 저자 데이비드 파킨슨은 몽타주를 “영화의 신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몽타주에 대한 실로 정확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경은 단일한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결합된 조직으로 이뤄진 ‘구조’를 말합니다. 영화 역시 단일한 장면들이 모여 일련의 구조를 형성할 때 완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몽타주입니다. 결국 영화 미학의 정수는 단일한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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