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코로나19 사태 發 고용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이들은 청년층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0.2%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청년층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26.3%로 전년 대비 2.1% 상승했으며, 고용률(취업인구 비율이라고도 불린다. 예를 들어, 고용률이 70%라고 하면 100명 중 70명이 취업자라는 것)은 55.7%로 1982년 통계 작성 이후 5월 기준 가장 낮았다. 지난 5월 구직급여 신청자는 열명 중 네명 꼴로 청년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구직하는 청년들에게 ‘코로나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IMF 세대’와 마찬가지로 취업 시장에서 집단적인 실패와 절망의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취업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번번이 탈락할 것이며 설사 취업이 되더라도 마냥 안정적인 직장생활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고용이 불안정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안타깝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 이상 코로나 세대의 취업난을 해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의 좌절을 위로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질문과 한 가지 명령을 던진다.
먼저 질문, 절망은 당신을 지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명령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꿈틀거려 보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봐. 그리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움직여져.”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에서 중학생 은희의 한문 선생님이자 소울메이트였던 영지가 은희에게 해준 말이다. 이후 은희는 영지가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한 채로 이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둘 움직여 본다. 절망적인 일이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손가락은 움직인다. 관객은 애초에 절망이란 허상이며 육체와 정신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에서는 발가락을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복수를 위해 빌과 그 일당을 습격한 ‘더 브라이드’는 외려 곤죽이 되도록 맞고 하반신이 마비된다. 그는 홀로 차 뒷좌석에 누워 마비된 하반신을 보며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
“엄지발가락 움직여. 엄지발가락 움직여. 엄지발가락…”
발가락 한 개가 꿈틀거리고, 다시 또 한 개가 더 움직이더니, 결국엔 마비됐던 하반신이 돌아온다. 완전히 회복한 더 브라이드는 빌과 그 일당을 쓸어버린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손가락과 발가락은 움직인다. 그렇게 절망이 당신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다시 그 절망의 근원에 도전할 수도 있다.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책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실패하면 루저가 돼야 하는가? 아니면, 실패해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답은 분명하다. 실패했더라도 손가락, 발가락만 꿈틀거릴 수 있다면 나는 나다. (중략) 삶이 고통스러워 죽고 싶을 때, 실패해서 꼼짝도 하기 싫을 때, 손가락을 펴보라. 꿀꿀이, 아니 발가락을 꿈틀거려보라. 당신 몸의 맨 끄트머리, 말단의 감각이 살아 있다면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여보는 것은 내가 나로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아무리 최악의 실패라도 당신이 살아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71~72쪽)
<벌새> 후반부 영지의 내레이션이 마음을 울린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절망은 나를 지배할 수 없었다. 나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했다.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난 미래의 코로나 세대가 그렇게 이야기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