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나는보리’, 한 소녀의 건강하고 맑은 성장 드라마
[송석주의 영화롭게] ‘나는보리’, 한 소녀의 건강하고 맑은 성장 드라마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6.15 13: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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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유 감독, 영화 <나는보리> 스틸컷

열한 살 소녀 보리(김아송)는 외롭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수화로 소통하는 엄마와 아빠, 남동생 정우(이린하)의 대화에 잘 어울리지 못한다. 보리는 항상 그들의 ‘소리 없는’ 이야기를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보리는 수시로 집 근처 파란 지붕의 사당 앞에서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자신도 가족들처럼 제발 소리를 잃게 해달라고. 보리의 소원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나는보리>는 생생한 초록빛이 감도는 아름드리나무 같다. 맑은 하늘과 정감 넘치는 골목길, 푸른 물결이 아름다운 바닷마을의 평화가 장면마다 오밀조밀 들어차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산뜻하게 만드는 이 장면들은 물처럼 부드럽게 관객들의 눈으로 흘러들어온다. 소박하지만 우아하고, 때에 따라 정교하기까지 한 편집과 화면 구도에 감독의 사려 깊은 태도와 고민이 느껴진다.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가족 안에서 보리는 이따금 소녀가 아닌 어른이 된다. 가족을 위해 전화로 음식을 주문하고, 밤늦게 배 타러 나가는 아빠를 배웅한다. 출근을 준비하는 아빠의 인기척은 집에서 오직 보리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면 앞자리는 늘 보리가 차지한다. 택시 기사를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보리는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구도 속에 자리한다.

영화에는 가족과 보리의 심적·물적 거리감을 재기 발랄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많다. 보리가 엄마, 정우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있을 때의 장면이 대표적이다. 버스표를 끊고 돌아오는 보리는 정류장 바깥에서 엄마와 정우가 정답게 노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여기서 카메라는 보리의 얼굴을 슬로모션으로 잡아내며 소녀의 외로움을 확대하고 팽창시킨다. 이어 카메라는 세 인물을 동시에 롱쇼트로 포착하는데, 이때 보리는 정류장 유리창(이차프레임)에 갇힌 구도에 놓인다. 이처럼 감독은 가족 안에서 보리가 겪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한 인물 구도와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다각도로 형상화한다.

영화 중반부에서 보리는 친구인 은정(황유림)에게 소리를 잃고 싶다고 고백한다. “왜 소리를 잃고 싶어?”라는 은정의 물음에 보리는 “집에 있으면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더 이상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열한 살 소녀는 소리를 잃기 위한 갖가지 행동에 돌입한다. 귀를 쌔게 잡아당겨보고,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 파보기도 한다. 은정의 MP3를 빌려 소리를 최고로 높인 후 이어폰을 계속 귀에 꽂고 있는가하면,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귀에 물이 들어가도록 얼굴을 담그고 있는다.

김진유 감독, 영화 <나는보리> 스틸컷

그런 보리의 행동 뒤로, 카메라는 언제나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정우를 처음으로 단독 포착한다. 화면의 지배권이 보리에서 정우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경제적인 화법을 고려한다면 다소 불필요해 보이는 정우의 등굣길 모습과 그 전후의 상황을 꽤나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는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정우가 학교에서 언제나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정우에게는 보리처럼 자신의 복잡한 속내를 털어 놓을 친구조차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정우도 보리만큼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다름 아닌 보리에게 말이다.

하지만 감독이 등굣길 시퀀스에서 보리에게(혹은 관객에게)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정우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아니라, 그의 능동적이면서도 주체적인 모습에 있을 것이다. 화면에 홀로 놓인 정우는 학교에 가기 위해 스스로 일어나고, 양치를 하면서 자신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직접 잰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공을 손에서 항상 놓지 않는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감독은 자칫 보리의 성장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정우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의 등굣길 시퀀스 직후 보리는 소리를 잃기 위해 (아빠가 자신을 잘 찾을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철없는 행동을 저지른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여전히 소리가 들린다. 병원에서 깨어난 보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족들과 의사 앞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연기를 한다. 하지만 소녀의 발칙한 자작극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토록 소리를 잃고 싶어 했던 보리가 실제로 그렇게 된 후(정확히 말하면 연기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쏟아졌던 무수한 상처의 말들을 통해 이제껏 생각해보지 못한 가족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그려보게 된다. 영화 내내 수화로 소통하는 가족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그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던 보리는 이제 가족이라는 이미지를 경유해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고난과 사회적 편견을 목도한다. 더 크고 중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 유달리 롱쇼트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 역시 이와 맥이 닿아있다. 세상에 발을 딛고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이는 영화의 전반적인 화법이자 정서이고 주제이다.

김진유 감독, 영화 <나는보리> 스틸컷

이러한 보리의 시선의 확장은 영화 제목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리는 화면 안으로 파동을 일으키며 날아 들어온다. 하지만 엔딩에 이르면 보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걷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연한 소리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 소녀가 위태롭게 날다가(fly) 비로소 자신의 존재(I am)를 긍정하며 세상에 안착하게 되는(혹은 계속해서 그것을 반복하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혼자 천천히 걷다가 누군가를 향해 웃으며 인사하는 보리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것이다. <나는보리>가 전하는 한 소녀의 성장담은 바로 이러한 오프닝과 엔딩의 기묘한 수미상관의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혹시 영화에서 집밖을 나온 보리가 육성으로 내뱉는 첫 대사를 기억하는가? “안녕하세요!” 학교를 가기 위해 골목길을 내려오는 중 보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그렇게 보리는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누군가에게 안녕을 물을 줄 아는 어른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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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쌤 2020-06-15 18:49:15
기사를 잘보았습니다. 복붙 기사가 아닌 정성이 담긴 기사네요^^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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