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돈 생기면 일 안 한다고?
전 세계는 ‘기본소득’ 실험 중... 돈 생기면 일 안 한다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12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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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주장한 공산주의는 이론상 완벽한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최소 노동으로 최대 만족을 탐하는 인간의 간악(?)한 속성을 간과한 탓에 자본주의에 밀려 주도권을 잃은 지 오래인데, 그런 이유에서 최근 ‘기본소득’(소득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최소 생활비 지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경제난 해소 차원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기본소득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국민재난지원금은 일회성 지원책으로, 정기적으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차이가 있지만, 그 맛을 본 국민 사이에서 호평이 일면서 공론화가 시작되는 분위기다.

먼저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과거 2016년 성남시장 재직 당시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살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지역화폐)을 지급한 이력을 지닌 그는 2017년 대선 경선에서도 기본소득을 공략으로 내세운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서는 중앙정부가 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기도 전, 도 지자체 최초로 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기도 했다. 지난 6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단기목표 연 50만원, 중기목표 연 100만원, 장기목표 연 200~600만원 등 장단기별 목표를 두고 실시하면 기본소득은 어려울 것이 없다”며 기본소득과 관련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여당은 재원 마련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민 신망을 얻는 데 기본소득만 한 것도 없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재원 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 “24조원의 예산이 있다고 가정할 때 전 국민 기본소득은 비정규직, 실직자 및 대기업 정규직에게 똑같이 월 5만원씩 1년 기준 60만원을 줄 수 있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의 경우 실직자에게 월 100만원씩 연 1,2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며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기본소득보다 더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기본소득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팽배한 상황인데,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이 논의됐던 서구권 국가의 상황은 어떨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직 ‘검증 중’이다. 우선 핀란드는 2017년 1월부터 25~28세 실업자 2,000명을 임의로 선정해 1인당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2년간 지급하는 기본소득보장제를 시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수급자들의 경제적 부담감을 덜어주긴 했지만, 2년 뒤에도 취업률이 증가하지 않아, 실업률 감소의 애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실험을 끝마쳤다.

빈곤과 범죄로 악명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2019년 2월부터 주민 125명에게 18개월간 매달 500달러(약 60만원)를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 중인데, 애초 기한은 2020년 8월이었지만, 돈을 지급하면 근로 의욕이 감소한다는 통념과 달리 구직 단념 비율이 2%를 넘지 않는 등 긍정적 면모가 확인(지난해 10월 발표 내용)되면서 2021년 1월까지 기한을 연장해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케냐에서는 2016년 10월부터 295개 마을을 A~D그룹으로 나눠 각각 ▲미지급 ▲12년간 매월 (1인 한 달 평균 생활비인) 22달러(약 2만5,000원) ▲2년간 매월 22달러 ▲일시불로 528달러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 중이다. 스페인의 경우 이번 달부터 가구 구성원 수에 따라 월 최저소득을 462유로(약 63만원)에서 1,105유로(약 151만원)로 설정하고 수입에서 차액을 보전해주고 있다. 다만 올해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9.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탓에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스위스는 2016년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붙였는데, 당시 찬성 23%, 반대 77%로 부결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 효과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내 여론은 어떠할까? 지난 5일 기본소득제 도입과 관련해 리얼미터가 진행한 설문조사(성인 5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48.6%가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는 응답은 42.8%로 6%포인트가량 낮은 수치를 보였다.

기본소득 찬성 여론이 높게 조사됐지만, 일각에서는 근로 의욕 감소를 이유로 기본소득을 반대하고 있다. 홍준표 국회의원 역시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 제도”라며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몰락의 패인과 동일시하며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자원 조달도 큰 과제인데, 실제로 최근 넉 달간 나랏빚이 56조원 넘게 폭등하면서 국가채무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 중앙정부 국가채무는 746조3,000억원으로, 이는 2014년 1월 월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규모다.

반면 이 도지사를 포함한 일각에서는 “증세 없이 기본 복지제도를 개편하면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며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근로소득의 지원방안이지 대안책은 아니라는 주장인데, 이와 관련해 스페인의 사회정치이론가 다비드 사사카스는 책 『무조건 기본소득』에서 “조건부 보조금의 수급자가 구직활동과 유급 노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의욕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일이든, 취업은 곧 보조금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며 “반면 기본소득과 같은 무조건적 보조금은 바닥으로 기능하는 것이지 결코 지붕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의 경우, 유급 노동이 곧 보조금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하락하지 않는다. 노동이든 기본소득이든 여러 수입원에서 나오는 수입을 쌓아가다가 수입이 일정 선을 넘으면 조세 체계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장 마주한 생계 해결을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요긴한 정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재원 마련을 비롯해 그 효과가 분명하게 입증되지 못한 한계를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선 의미가 있지만, 과거 공산주의 이념처럼 검증되지 않은 그럴듯한 이론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섣부른 시행보다는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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