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와 이기주 ‘말이 담고 있는 오만가지 사랑’
김이나와 이기주 ‘말이 담고 있는 오만가지 사랑’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6.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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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누군가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의 진의(眞義)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은 “사랑한다”와 어떻게 다를까. 좋아한다, 사랑한다, 같은 말을 해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해,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 뒤에 숨은 감정을 살펴야 한다. 

작사가 김이나의 『보통의 언어들』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보통의 언어들’이라고 하니 저절로 떠오르는 제목이 하나 있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두 책은 사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랑이 아님을 말한다. 

“인간의 언어는 파동이 아닌 글자로 존재하기에,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한다. (중략) 감정이 언어라는 액자 안에서만 보관되고 전달된다면, 나는 이 액자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액자를 공유하는 것이 진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에.” (이하 『보통의 언어들』 6~7쪽)

언어 안에는 복잡미묘한 개인의 감정이 담겨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말을 할 때는 감정은 감춰지고 오직 언어만이 드러난다. 김이나가 ‘액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언어와 함께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풀겠다는 말이다. 가령 김이나가 생각하는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에는 이런 감정이 담겨있다. 

“연인 사이에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건 빈 곳이 느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이곳이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이 사랑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해가 좋은 날 널려진 빨래가 된 것처럼 뽀송뽀송 유쾌한 기분만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17쪽)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주는 안정성이 있다.” (18쪽)

반면, 작가 이기주는 “사랑한다”는 말에 조금 다른 감정을 담는다. 그는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5호선 공덕역에서 만난 노부부를 떠올린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할머니 옆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제법 시끄러웠고, 할아버지는 뉴스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어허” “이런” 등의 추임새를 격렬하게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말한다. “여보, 사람들 많으니까 이어폰 끼고 보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 맞다. 알았어요. 당신 말 들을게요”라고 답한다. 작가는 이 말을 “당신을 사랑하오”라는 문장으로 듣는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사랑의 본질이 그렇다. 사랑은 함부로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은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말하거나 방패막이가 될 만한 부차적인 이유를 내세우지 않는다. 사랑은, 핑계를 댈 시간에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문턱을 넘어가며 서로에게 향한다.” (『언어의 온도』 25쪽)

당신이 무엇을, 혹은 누군가를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 언어에 담은 감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이나와도, 이기주와도, 그 어떤 사람과도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들’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살핌에 따라 ‘언어의 온도’를 갖게 되고, 한 개의 언어는 지구상의 사람 수만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상대방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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