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말과 행동, 미국인보다 ‘우리 한국인’이 더 심하다?
차별의 말과 행동, 미국인보다 ‘우리 한국인’이 더 심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10 08: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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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그린북' 스틸컷]
[사진=영화 '그린북' 스틸컷]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때는 1962년.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지방으로 순회공연에 나선다. 인종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순회공연에 나서지만, 백인들은 그의 천재성을 소비할 뿐, 그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진 않는다. 공연장에 딸린 식당에선 흑인이란 이유로 셜리의 출입을 거부하고, 시내 상점에선 흑인이란 이유로 양복을 팔지 않는다. 재능과 명성, 경제력이 뒷받침된다 해도 피부색이 검으면 마땅한 권리를 누릴 수 없고, ‘차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흑인 전용 숙소를 찾아 몸을 누여야 하고, 심지어 박수갈채를 받고 막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조차 건물 내 (백인) 화장실 출입을 제지당한다. 더욱 암울한 건 셜리를 차별하는 대상이 백인만은 아니라는 사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린북>(2018)에서 그는 “돈 많은 백인들이 피아노 치라고 돈을 주지. 문화인 기분 좀 내보려고. 하지만 내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 사람들한테 나는 그냥 깜둥이일 뿐이야. 그게 그들의 진짜 문화니까. 그런데 하소연할 곳도 없어. 내 사람들(흑인)조차 자신들과 다르다며 나를 거부하거든.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난 대체 뭐죠?”라고 한탄한다.

이런 차별의 사례는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1950년대, 미국 버스는 흑인과 백인 좌석을 구분했는데, 흑인은 자리가 비어도 백인의 자리에 앉을 수 없지만, 좌석이 부족할 경우 흑인은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했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조처였지만, 이런 차별은 1952년 12월 미국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을 기점으로 일어난 ‘버스 안 타기 운동’으로 1956년 연방 법원이 버스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인종차별 문제를 꼬집는 내용으로 미국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될 정도로 인정받는 문학작품 『앵무새 죽이기』 속 한 흑인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장에 서지만, 그런 실상이 참작 가능한 상황에서도 배심원들은 끝내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죄가 없는데 왜 도주했냐’는 질문에 그는 “변호사님도 저처럼 깜둥이였다면 겁이 났을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앵무새 죽이기』의 작품 속 시대 배경은 1930년대. 그 후로 약 100년이 흘렀지만,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지난달 25일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촉발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경찰과 흑인 그리고 백인과 흑인이 충돌했고,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별의 감정이 생겨나는 걸까? 많은 전문가들이 ‘향사회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향사회성은 사회를 위해 공헌하거나 타인을 도우려는 성질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를 (주관적 관점에서)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성향이 과도할 경우 자칫 그런 발전을 저해하는 대상에 대한 배타적 감정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책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에서 “(향사회성은)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적대심과 증오를 품게 되는 현상”이라며 “(특정 인종·민족·종교·성별·직업·신분 등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극단적인 욕설과 비방 등)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억제 정책,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이런 현상의 예”라고 지적했다. 나와 ‘다름’을 지닌 존재를 ‘틀린’ 존재로 여기고 더 나아가 그런 존재를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간주해 배척한다는 것이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고, 국가별로 우익 세력의 차별 행동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누군가는 ‘생존본능’을 차별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내 집단’이 다른 ‘외 집단’으로부터 공격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에서 생존본능이 발동했다는 것. 이와 관련해 스웨덴의 정신과 전문의 안데르스 한센은 책 『인스타 브레인』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우세한데, 이는 부정적인 감정이 역사적으로 위협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위협은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먹거나 마시거나 자거나 혹은 짝짓기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도 위협에 대한 대처는 미룰 수 없다. 이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비단 거창한 사회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차별적 요인은 일상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도 얼핏 모두를 한 데 포용하는 긍정적 단어 같지만, ‘울타리’를 어원으로 한 만큼 폐쇄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국어학자 유창돈은 「족친칭호의 어원적 고찰」이란 글에서 “(우리는) 동족을 말하는 것이며 자신이 속하고 있는 범위를 한정하는 말이매 결국은 겨레(단일 민족)와 상관됨을 벗어나지 못 하는 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과 교수 역시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은 ‘우리 것’은 본래 좋고 우월한 것이며 우리 속에 사는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어도 우리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히 잘난 것처럼 여긴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인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도덕적이라 여기는 반면 ‘그들’의 도덕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장한업 교수 역시 책 『차별의 언어』에서 “우리는 중국 정부가 쓰는 조선족이라는 말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은 재미 동포 또는 재미 한인, 일본에 사는 한인은 재일 동포 또는 재일 한인이라고 부르면서 유독 중국에 사는 한민족만 조선족이라고 부릅니다”라며 “그들을 재중동포나 재중한인 등으로 바꿔 불러 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물리적으로 배척하고 불이익을 가하는 행동뿐 아니라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속에 담긴 차별의 인식. 이참에 그 의미를 곱씹어 일상 언어에서부터 차별을 덜어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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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 2020-06-22 19:30:26
조선족은 절대 동포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 중공인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그러니 제발 조선족을 동포라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