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새로운 종류의 다람쥐를 연구할 때처럼, 겉보기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종과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인간의 이와 손, 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해부학적 특징으로 미뤄보아, 인간이 일종의 영장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종류의 영장류이다. 192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의 가죽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인간의 피부를 어딘가 적당한 위치에 끼워 넣으려고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괴상한 영장류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에 집어넣어도 인간의 피부는 잘못 놓인 것처럼 동떨어져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피부를 그 줄의 맨 끝에,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꼬리 없는 유인원의 가죽 옆에 놓을 수밖에 없다. <45쪽>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살펴볼 작정이지만, 우선 대답해둬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제기된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괴상한 종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다른 영장류의 표본과는 전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보았다. 이 특징은 털 없는 벌거숭이 피부였고, 그래서 나는 동물학자로서 그 생물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우리는 그 생물에게 적당한 이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직립한 원숭이, 연장을 만드는 원숭이, 영리한 원숭이,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 등,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우리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들이 아니었다. (중략) 게다가 ‘털 없는 원숭이’라는 호칭은 우리가 그 생물에 접근하고 있는 독특한 방식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이 이상야릇한 특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 없는 원숭이가 돼야 했을까? <75쪽>
예술가든 과학자든 탐험 행위를 할 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충동(네오필리아 충동)과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충동(네오포비아 충동)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은 우리를 새로운 경험으로 내몰고, 우리는 새로움을 갈망한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은 우리를 억제하고, 우리는 낯익은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자극과 우호적인 낯익은 자극이 우리를 양쪽에서 끌어당긴다. 우리는 그사이에 끼여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할 것이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곧장 재난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런 갈등상태는 머리 모양과 옷, 가구와 자동차의 유행이 끊임없이 바뀌는 이유를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적 진보의 토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탐험하고 후퇴하고, 조사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조금씩 넓혀간다. <192쪽>
『털 없는 원숭이』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김석희 옮김│문예춘추사 펴냄│344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