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2019년에도 많은 역사영화가 개봉됐다. 신년벽두에 일제 말기의 조선 어학회 사건을 소재로 한 <말모이>가, 3‧1절을 앞두고 <자전차왕 엄복동>과 <항거 : 유관순 이야기>가 개봉됐으며, 한창 반일 불매운동이 벌어지던 8월에는 광복절에 맞춰 <봉오동 전투>가 나와 흥행했다. 이 영화들은 물론 2019년의 정세에 어울리는(?) 나름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나라를 빼앗겼어도 우리는 지지 않았다’라는 반일 저항투쟁과 승리의 서사를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나 계몽적인 지도자보다 역사 속에 묻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의로운 행동을 복원하고, 그들의 저항이 광복을 이끈 힘이었다는 이야기”를 새로이 더했다. 이는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의 역사를 4‧19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그리고 2016/17 촛불항쟁에 이르는 “‘광장의 민주주의’와 연결하는 문화적 시도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189쪽>
영화가 대중의 망탈리테(정신상태,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안, 그리고 한국 영화판이 봉준호‧박찬욱‧이창동 감독 같은 ‘좌빨(?)’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우파‧기득권 세력은 영화판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같은 2000년대의 흥행작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의 사회 변화와 남북화해와 통일에 대한 대중의 희망을 맥락으로 했다는 사실도 우파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196쪽>
특히 2016년 10월에 개봉된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둘러싼 우파와 정권의 행태는 거의 횡포에 가까웠다. 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보도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거부한 KBS 기자들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영화 관람을 통해 가장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 이는” 단연 박근혜였다. <인천상륙작전> 관람 후 박근혜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안보통치’를 강화했다고 한다. 코미디 아닌가?<198쪽>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천정환 지음│역사비평사 펴냄│356쪽│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