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대의 이름은
아직도 그대의 이름은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06.04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코로나19로 생활 속 거리를 지키려니 피로감이 쌓인다. 이에 지인들과 SNS로 소통하느라 눈까지 아프다. 이 와중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어 다행이었다. 모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결혼이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란 말에 고개가 끄덕였다. 이 때 ‘완벽하게 만족하며 사는 부부가 과연 얼마일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오죽하면 바다로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지만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는 세 번 기도 하라고 했을까. 이로보아 인내와 헌신이 필요한 게 결혼 생활인가보다. 이 말에 걸맞게 이 드라마는 총 열여섯 편을 방영하며 그 속에 부부 간 갈등과 애증을 한껏 녹였다. 많은 기혼자들이 지인들과 이 드라마 내용을 공유할 정도였다니 시청률에서 인기도를 짐작할 만 하다. 

며칠 전 지인들 단체 카톡 방에서도 이 드라마 내용이 화제였다. 어느 지인은 우스갯 소리로 극중에 주인공인 이태오는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의 미움을 사서 음식에 침 뱉어 줄지도 모른단다. 그러자 또 다른 지인은 자신은 이태오를 실제로 보면 훤한 인물에 혹해 셋째 부인도 자청할듯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끝내 바람둥이 이태오가 나락으로 떨어진 모습을 방영했다. 극중 남자주인공인 이태오가 이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재혼한 부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게 그것이다. 원인은 양손의 떡을 전부 탐내다가 벌어진 결과였다. 재혼 한 후에도 이혼한 전처(前妻) 곁을 기웃 거린 게 화근이었다. 이를 두고 어떤 지인은 인과응보라고 고소해 했다. 필자의 경우 이태오의 비참한 몰락은 왠지 측은했다. 

왜냐하면 한 가정의 가장, 아버지, 사회인이었던 이태오는 자신의 수중에 지닌 모든 힘을 순간 몽땅 잃어서다. 이 드라마를 대하며 ‘남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맞닥뜨렸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때 그 힘이 하늘을 승천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살뜰한 아내 사랑, 자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듬뿍 받는 남자는 성공한 인생인 셈이다. 

현대 남자들은 다수가 직장에선 상사의 눈치를 살핀다. 더해 가정에선 아내의 고압적인 큰 목소리를 의식하느라 바람 빠진 풍선 꼴이다. 이런 처지다보니 남자들에겐 가정에서 가족들 위로가 절실할 진대, 오늘날 남편들은 안타깝게도 부권父權을 상실한 상태다. 모르긴 몰라도 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잠재울 수 없는 바람기도 본능적이었겠지만, 전처(前妻)와 살면서 느낀 어느 심적(心的) 결핍에 의한 일탈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마저 든다. 

남자들 심리를 정확히 꿰뚫을 순 없다.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여하튼 가까스로 손아귀에 움켜쥔 것들을 하루아침에 상실한 이태오의 처참한 몰골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한편 이를 지켜보며 성평등 시대에도 ‘그 무엇이 여자의 일생을 좌우할까?’ 라는 의문이 일었다. 필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여자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남편이 곧 아내의 권력이요. 힘이라면 지나칠까. 

극중 주인공인 지선우도 촉망받는 병원 의사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편 바람기로 말미암아 엉망이 됐잖은가. 이태오 역시 그토록 자신의 권력인 처가에서 차려준 사업체도, 넘치는 성력(性力)의 징표인 재혼한 아내도, 토끼같이 귀여운 딸자식도 나중엔 수중에서 다 놓치고 말았다. 남자로서 생명인 힘이 고스란히 빠져 나간 것이다.  

이태오를 지켜보며 새삼스레 남자들의 힘을 떠올려봤다. 예전에는 단단한 근육질 형의 남자들이 대세였다. 이는 당시 너른 농경지를 경작하기 위해 남자의 힘을 필수로 손꼽았을 때 일이다. 일예로 한자의 사내 남(男)자는 밭전(田)자 부수를 머리부수로, 힘력(力)자를 발부수로 글자가 형성됐다. 이것만 살펴보아도 사내 남(男)자는 말 그대로 너른 밭을 경작하는 힘을 지닌 남자를 의미한다.

요즘은 어떤가. 농촌에서 구태여 쟁기를 짊어지고 피땀 흘려 애써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 농사도 기계의 도움이 크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삶 속의 모든 일들이 해결되는 인공지능 시대다. 이젠 남성은 예전처럼 더 이상 힘의 대명사가 아니다. 

힘의 상실로 돌연 남자들이 매가리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가정에서조차 기가 죽어 자신의 주장도 강하게 내세우지 못한다. 매사 아내 눈치를 살피는가 하면 남편으로서 주도권도 빼앗겼다. 월급 또한 아내 통장 잔고만 배불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성이 행복해야 여성도 행복하다. 아직도 가정에서만큼은 남자들의 ‘힘’이 절박하다. 부권의 권위는 자녀들 가정교육에 필수 아니던가. 이즈막 청소년 비행만 해도 부권의 부재 탓이란 생각이다. ‘후레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자식을 원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남편 기를 한껏 되살려 줘야 할 것이다. 남자에겐 힘이 곧 행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