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공권력에 살해된 흑인…그 속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
경찰 공권력에 살해된 흑인…그 속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6.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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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코럴게이블스 시청 앞에서 경찰관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코럴게이블스 시청 앞에서 경찰관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미국이 ‘대란’(大亂)에 휩싸였다. 미(美) 전역 140여개 주요 도시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 전국 곳곳에서 경찰과의 무력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그 기세가 어찌나 큰지, 한때 백악관 인근에서 시위대와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대치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지하 벙커로 피신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일부 시위대가 상점을 습격·방화하고 경찰이 차량으로 시위대를 밀어붙이는 등 아찔한 광경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1일(현지 시각)에는 경찰 총에 맞은 첫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런 대란은 백인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의 죽음이 도화선이 됐다. 지난달 2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누군가가 위조지폐로 담배를 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 데릭 쇼빈(44)이 수갑으로 이미 제압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46)의 목을 약 9분간 짓눌러 사망케 하면서다. 당시 현장 상황을 담은 동영상에 따르면 쇼빈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플로이드를 압박했고, 그 압박은 플로이드가 의식을 잃은 지 2분여 뒤에야 풀어졌다. 해당 사건으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네명이 해고되고, 쇼빈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성난 민심이 들고일어서면서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게 향하는 차별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1863년 이뤄진 흑인 노예해방으로 자연인 신분을 얻긴 했지만, 이후에도 줄곧 문제적 인종으로 취급됐다. 1970년 에릭 가터가 개비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2014년에는 존 크로포드와 타미르 라이스가 장난감 총을 들고 있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었다. 같은 해 말린 피녹은 고속도로를 맨발로 배회했단 이유로 경찰에게 참혹하게 폭행당했고, 마이클 브라운은 절도 혐의로 체포돼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총을 열두 발 맞고 사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아타티아나 제퍼슨이 오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자택에서 그것도 여덟 살 조카가 보는 앞에서 피격당했다. 공통점은 피해자 모두가 흑인이라는 점.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에 희생된 흑인 사망자는 백인의 세배. 2005년 이후 공무집행 중 살인으로 기소된 경찰관은 100명에 달하지만,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저널리스트 타네하시 코츠는 책 『세상과 나 사이』에서 “경찰에게는 네(흑인) 몸을 파괴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는 걸 이제 너는 똑똑히 알게 됐어. 그런 파괴가 어떤 불행한 과잉 반응의 결과인가 아닌가 하는 건 중요치 않아.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중요치 않아. 그런 파괴가 바로 같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건 따질 필요도 없어. (중략) 네 몸을 옭아매려는 사람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네 몸은 파괴될 수 있어. 컴컴한 계단통으로 들어섰다가도 네 몸은 파괴될 수 있어. 그렇더라도 그 파괴자들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거야. 그들 대부분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거야. (중략) 이 모든 게 흑인들에게는 오래된 일이야.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흑인 사회는 폭발했다. 일부는 자신을 차별하는 기존 ‘사회 질서’를 향해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조직화되지 않아 실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극좌파’ 세력으로 간주해 “시위대의 화를 돋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찰로부터 흑인 시위자들을 보호하는 백인 여성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경찰로부터 흑인 시위자들을 보호하는 백인 여성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물론 폭력 시위는 비판받아 마땅한 범법 행위다. 다만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흑인 청년의 죽음으로 폭발한 미국 내 흑인(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타인종)들의 분노 폭발을 저열한 폭력 시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쩌면 근시안적 관점일 수 있다. 실제로 SNS상에는 상가를 약탈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피커를 들고 만류하는 흑인들, 고립된 경찰을 둘러싸 보호하는 흑인들, 스크럼을 짜고 서서 경찰로부터 흑인 시위대를 보호하는 백인 여성들, 시위대 앞에서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이 인종차별에 항의해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취했던) 한쪽 무릎 꿇기 자세로 연대를 표한 백인 경찰 등 이번 사태를 차별 해소의 계기로 삼으려는 다양한 노력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왔다. 실제로 백인 경찰들의 이런 무릎 꿇기 자세는 시위대와의 무력 충돌을 줄이는 데 적잖게 공헌했는데, 이는 과거 콜린 캐퍼닉이 벌였던 비폭력 저항의 성과라는 평이 나온다.

이 외에도 SNS에 오른 어느 동영상에는 무력시위를 주장하는 젊은 흑인 남성에게 연배 있는 흑인 남성이 “이렇게 위험한 길은 네가 가서는 안 될 길이야. 내가 4년 전에도 시위했거든. 키이스 라몬 스캇 사망 사건 때. 이런 똑같은 짓을 매일 밤 주구장창”이라며 “하루 지나도 또 이 상태, 또 이 상태. 그런데 바뀌는 게 전혀 없어. 더 나은 방법을 찾아봐. 그리고 네 몸부터 간수해”라고 비폭력 시위를 권면하는 장면이 담겨 주목을 받았다.

흑인 해방 운동의 전설적인 인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에 운집한 25만명의 인파 앞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옛 노예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을 꾼다)”고 말한 바 있다. 그 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번 사태가 벌어졌지만, 시위 과정에서 일부 연대가 이뤄지는 상황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평화적 시위가 일부 폭력 시위로 어긋난 면이 없지 않지만, 이번 사태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주요한 변곡점이 돼야함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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