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산책의 즐거움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산책의 즐거움
  • 스미레
  • 승인 2020.05.28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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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한다. 20대에 나보다 서촌 근방을 많이 걸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란 요상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애 있으면 차가 필수다’란 주위의 말을 10년 째 웃어넘길 수 있는 것 역시 내가 타고난 뚜벅이기 때문일 테다.

교외로 이사 이사와 가장 달게 들인 습관이 오솔길 걷기다. 대중교통이 뜸한 곳. 하지만 산책길과 자전거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차가 많은 서울에선 아이 손을 잡고도 마음을 졸였지만, 이곳에선 산책이 숨쉬기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엄마! 자벌레! 꼭 무지개 링 같다. 몸을 움츠렸다, 펴네. 땅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나가는 거야. 얘도 작용-반작용 법칙을 이용해요.”

아이는 아다지오로 걸으며 몰랐던 존재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름 모를 꽃을 기뻐하고 작고 낮은 것에 더 자주 시선을 맞춘다. 다디단 공기 맛과 걷기의 즐거움을 착실히 알아간다.

숲속으로 이사 온 첫 해에는 ‘숲 놀이’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발동했다.

아파트 화단에서 몇 년 놀아본 자신감이 그 발단이었을 게다. 그러나 자연에서 고즈넉이 놀고픈 마음은 엄마의 로망일 뿐. 아이가 진득이 앉아 개미를 관찰하거나 ‘이건 무슨 꽃이예요?’ 하는 기특한 장면은 매우 드물게 연출되곤 했다.

아이와 자연에서 놀 때면 자연관찰 책에서 본 걸 읊어주고파 입이 근질댔다. 그 무렵 아이가 자연관찰 책에 별 흥미가 없어 그 마음이 더 심했던 것도 같다.

“와 이 거미줄 봐, 신기하지? 재밌지?”
“...” 공허한 침묵만이 되돌아왔다.
“떡갈나무는 활엽수고 소나무는 침엽수야.
광합성은... 엽록체는.....”

고요한 숲 속에 울려퍼지는 건 내 목소리뿐. 머쓱해져 돌아본 아이는 나뭇가지로 낙엽을 들쑤시고 바위에 기어오르고 도토리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심도 없는 아이에게 소 귀에 경 읽듯 하는 설명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임을, 그렇게 배웠다.

아이가 놀 땐 그대로 놀게 두고, 자기 전에 ‘떡갈나무’ 책을 슥 껴서 읽어주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숲에 다녀온 날은 그조차 잊은 채 잠들곤 했지만.

종일 에너제틱하게 놀던 아이도 때로는 조용히 걷는다. 그땐 나도 입을 다문다. 사색가 아닌 산책자는 있어도 산책자 아닌 사색가는 없다지 않던가.

그렇게 걷다 본 것들, 걷다 나온 생각들이 아이의 철학과 과학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것을 몇 해 동안 지켜봤다.

아이는 나무 사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를 보고는 주머니 가득 하던 도토리를 슬그머니 내놓았다. “다람쥐야, 이거 다 너 줄게. 맛있게 먹어.”

초저녁, 벤치에 누워 한참을 있던 아이가 그런다. “엄마, 별이 너무 예뻐. 저 별 엄마 주고 싶다. 저건 목성이에요?”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아니, 그거면 족하다.

자연에 대해 많은 걸 알기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꽃향기에 설레고, 매일 달라지는 달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가진 게 많은 사람일 테니까.

아이와 걸으며 아이의 속도엔 대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5분 거리를 30분에 거쳐 걷는 사람들 아닌가.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도 마찬가지다. 한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3분 만에 끝나는 날도 있다. 간단한 집 앞 산책에도 융통성과 인내심은 필요한 것이었다.

시간이 넉넉하고 몸이 편안할 때 마음도 여유를 갖는다. 그러므로 편한 옷과 신발은 필수다. 얇은 겉옷과 가벼운 양산에다, 요즘은 손 소독제와 여분의 마스크도 챙긴다.

가방에는 아이보다 먼저 지칠 때를 대비한 엄마 몫의 물과 간식도 넉넉히 넣어둔다.

아이와 조약돌을 줍고, 가위 바위 보를 해 이긴 사람이 한 발짝 씩 나가는 게임, 최대한 큰 보폭으로 걷기 등을 하며 동네를 두어바퀴 돌고나면 어느새 건강한 시장기가 돌곤했다.

오후의 정직한 햇빛 속을 걸어낸 마음은 그대로 나긋해지고 기분은 산뜻해졌다.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덕분이라 한다. 5분만 제대로 걸어도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편안해진다니, 아이와 함께하는 가벼운 산책을 오늘도 기대하는 이유다.

창 밖은 5월. 걷기에 아름답고 장미가 한창인 계절이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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