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vs 전쟁영웅’ 현충원에 묻힌 ‘참전용사’ 묘를 어찌할꼬...
‘친일파 vs 전쟁영웅’ 현충원에 묻힌 ‘참전용사’ 묘를 어찌할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5.2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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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사진=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대중들의 정의로운 기대는 여지없이 짓밟힌 채 각종 친일세력들은 미군정의 비호 아래 양지살이를 하며 더 살이 오르고 더 거드름을 피웠다. 사람들은 썩은 놈의 세상, 망할 놈의 세상을 되뇌었(다.) (중략) 독립운동 혐의를 앞세워 지하실에서 고문을 자행했던 바로 그자가 해방된 땅의 경찰로 변해 이번에는 좌익 혐의를 놓고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방법으로 고문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된 세월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중

1945년 해방을 맞이한 이 땅에선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인과응보’(因果應報/행한 대로 대가를 받는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쫓겨난 일제를 대신한 미군정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 데 급급해 과거 일제 부역자를 그대로 기용했고, 그렇게 다수의 친일파는 ‘처벌’ 대신 ‘출세’의 길을 걷다가 현충원에 묻혔다. 때마다 현충원 내 친일파 무덤을 파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수진 국회의원 당선인(서울 동작을)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탰다. 지난 24일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2020 친일과 항일의 현장, 현충원 역사 바로 세우기’ 행사에 참여한 이 당선인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破墓·무덤을 파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년까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친일파 파묘’ 법률안이 통과가 안 됐다. 현충원에 와서 보니 친일파 묘역을 파묘하는 법률안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향후 관련 법안 제정을 예고한 것이다.

사실 현충원 내 친일파의 묘를 이장하는 법안은 이미 수차례 발의된 바 있다. 2007년 김원웅 전 의원(현 광복회 회장)의 발의를 시작으로 2013년, 2016년, 2018년 각각 관련 법률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폐기처분 됐다. 과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기조’는 바꾸지 않은 이유가 큰데, 그 기조를 이어받은 ‘미래통합당’은 이번에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성은 미래통합당 청년비대위원은 이 당선인의 발언에 대해 “중국 문화혁명이나 조선 시대 부관참시가 연상되는 반(反)인륜적 발상”이라며 “친일파들에 대한 역사적 판단은 엄정하게 하되, 자칫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파묘’ 등의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법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아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과 기존의 묘를 이장할 수 없는 상황. 현재 현충원에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2005~2009)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기준으로 11명,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기준으로 63명의 친일파가 묻혀 있다.

보수 정당의 반대도 있지만, 친일파 인사의 파묘가 어려운 건 현충원의 설립 취지도 일부 영향을 미친다. 서울 동작동에 ‘서울 국립현충원’(당초 ‘국군묘지’)이 설립된 건 1955년. 전사 또는 순직한 군인 및 군무원 안장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로 인해 ‘친일파’의 과거를 지니고 있지만 6·25 전쟁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현재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초대 육군총참모장을 지낸 이응준(1890~1985), 만주군 헌병 출신 정일권(1917~1994), 독립군 토벌이 임무인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김백일(1917~1951), 임충식(1922~1974) 등이 ‘참전용사’ 신분으로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후 1965년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돼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까지 안장 대상에 포함하면서 친일파와 독립투사가 같은 하늘 아래 묻히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임시정부 마지막 비서장인 조경한(1900~1993)이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 달라”고 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파’로서 반민족행위를 자행했지만, 6·25전쟁 때는 ‘전쟁 영웅’으로 활약한 그들. 권력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들이라 비판받지만, ‘과’(過)만큼 ‘공’(功)이 커 섣불리 파묘를 결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직 대통령 묘에 묻힌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공로를 인정받긴 하지만, 과거 혈서를 쓰고 일본 군관학교에 입학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한 후 관동군 장교로 활약한 전적을 지니고 있다. 독립군 토벌에 참여한 것과 관련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앞서 2004년 대법원은 “박정희는 간도 조선인 특설 부대에 자원입대해 동북항일연군 토벌에 나섰다”는 내용의 출판물로 기소(명예훼손)된 출판업자에게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고 특설 부대에 근무했는지도 한국 현대사의 쟁점 중 하나”라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대통령마저 친일 행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 것.

다만 친일파라고 해서, 또 그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잘못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책 『친일과 망각』의 공동 저자 심인보는 “(취재진이 찾아낸 친일 후손 1,177명에 포함되지 않은) 그는 (자신을) 친일파 이재완, 이달용의 후손이라고 밝혔고, 서울 강남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며 “(그는) ‘친일 후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공개 사죄할 만큼 용기를 내지는 못하지만, 공개 사죄하는 친일 후손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했다”고 적었다.

지금껏 많은 친일파들은 “성공을 향한 열망 자체가 친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암울했던 시대였다고 항변”했지만, 어쨌든 입신양명을 위해 ‘친일 행각’을 벌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후손 입장에서 현충원에 묻힌 선조의 묘를 무작정 파묘하기도 어려운 상황. 오랜 기간 진척 없는 대립에 일각에서는 “친일파 묘지를 현충원 밖으로 이장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독립유공자 묘지와는 거리를 두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해당 사안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긴 쉽지만, 납득 가능한 선에서 설득과 타협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21대 국회에 바라는 국민의 기대는 그런 어려운 일의 해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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