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법정스님이 남긴 불교 창작설화 13편 
[책 속 명문장] 법정스님이 남긴 불교 창작설화 13편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5.25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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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제가 전날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구해준 이는 바로 저 사람이에요. 사람들이란 은혜도 몰라보는군요!” 이 말을 듣고 임금은 크게 부끄러웠다. 당장 그 인정머리 없는 사내를 꾸짖고 나서 “이 은혜로운 어진 사슴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며 나라 안에 영을 내리고 놓아주었다. 그 뒤부터 많은 사슴들은 이 사슴이 있는 곳으로 모여와서 마음 놓고 살게 되었고, 온 나라 사람들도 모두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그때 아홉 가지 털빛을 가진 사슴은 부처님이 지난 성상에 보살행을 닦을 때의 몸이고 사슴을 따르던 까마귀는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신 ‘아난다’란 제자이며 은혜를 저버린 사내는 한 평생 부처님을 괴롭히던 ‘데바닷다’였다고. <12쪽>

“오오 부처님이시여! 저는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 백성을 다스리고 있습니다만 제가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 제 명령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복종하고 있는 군대라 할지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이와 같이 조용히 있게 할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이토록 조용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부처님은 조용히 대답하셨다. “임금님은 사람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는 하지 않고 사람들의 겉모양만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임금님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보름달처럼 조용하면서도 밝은 빛이 번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밤바람은 나뭇잎을 스치고 신하들도 임금님 곁에서 빙그레 미소를 띠고 있었다. <17쪽>

원숭이는 소리를 치면서 정신없이 나뭇가지로 뛰어 올랐다. 악마는 이때, “저놈이 땅거미임에 틀림없다. 무섭다는 그 땅거미가 아니고야 영리한 원숭이 놈을 저렇게 형편없이 만들겠는가?” 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산골짝 깊이 도망치고 말았다. 원숭이의 얼굴과 밑이 빨갛게 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막망상莫妄想! 막망상莫妄想! <87쪽>

사내는 서릿발 같은 노승의 이 말을 간절한 격려의 말로 들었다. 목숨을 버려서라도 노승에게서 도를 배워야겠다고 비상한 결심을 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선뜻 자기의 왼쪽 팔을 쳤다. 하얀 눈 위에 빨간 피가 번졌다. 동강 끊어진 팔을 노승 앞에 바쳤다. 노승은 퉁방울 같은 눈으로 젊은 사내를 쏘아보았다. 속으로는 ‘이제야 사람 하나를 만났구나’ 싶었다. 십년의 그 오랜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으음… 모든 부처님이 처음 도를 구할 때에 법을 위해 형상을 잊었느니라.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뚝을 끊었구나. 이만 가까이 오너라.” <91∼92쪽>

『법정스님이 세상에 남긴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
법정 지음 | 김계윤 그림 | 불교신문사 펴냄│94쪽│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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