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스물에서 서른으로 우리가 건너온 보통의 순간들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지대폼장] 스물에서 서른으로 우리가 건너온 보통의 순간들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 윤효규 기자
  • 승인 2020.05.25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윤효규 기자] 그리고 지하철의 경우보다 한층 더 심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택시를 이용했을 경우다. 예전에도, 그때도, 거의 매번, 심지어 오늘도! 그 시각 택시를 타면 왜 항상 기사님들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애청하고 있는 것인가! 아, 손석희 씨의 그 정갈하고 냉철한 음성은 술에 찌들어 뒷자리에 너부러져 있는 내 모습과 어찌나 그리도 상반되는지…. <41~42쪽>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윤석. 아직도 그가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한 대사가 아른거린다. 싼티 나는 다방 레지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콧소리로  오빠~오빠~거리며 회를 사달라고 조른다. 그때 김윤석이 세계에서 제일 시크하고 찰진 어조로 한 대사가  정말이지 일품이다. “오빠여? 아빠여?” <45쪽> 

“어디에 사는 누구께서 신청하셨습니다. 윤상의 이별의 그늘.” 앗, 고된 녹음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 반가운 선곡이었다. 아직 음악이 시작되기 전 기사님께서 미리 불륨을 조금  올리시는 1차 행동 발견. 이윽고 그 유명한 인트로가 시작되고 있었고, 기사님께서 클랙슨 부분을 손가락으로 베이스 드럼에 따라  꽤나 정확하게 두드리시는 2차 행동 발견. 그러는 동시에 다시금 볼륨을 더 올리시는 3차 행동 발견.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나는 입을 열었다. “기사님, 윤상 좋아하시는가 봐요? 손가락으로 리듬도 타시는 거 보니까요!” 기사님은 반색하시며 “네! 저 이 노래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하신다. 이에 나도 한껏 격앙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하, 그러시구나. 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윤상이거든요!” 기사님은 마음 놓고 볼륨을 화끈하게 더 높이신다. 늦은 새벽 라디오 소리를 소음으로 여길 수도 있는 낯선 승객이 같은 취향으로 합치되어 편안한 친구로 허물어지는 순간. 친구가 된 순간부터 기사님은 과감히 4차 행동을 개시하신다. 따라 부르신다. 큭큭. 그것도 감정 이입하여 열창하신다. <66-67쪽>


『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박현준 지음│M31(엠31) │248쪽│1만35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