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삶, 그 책이 뜨는 이유
‘방송작가’의 삶, 그 책이 뜨는 이유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5.25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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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방송작가는 참 많은 일을 한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기획과 구성은 물론 출연자 섭외, 인터뷰 진행, 대본 및 자막 쓰기, 녹화 현장 관리까지. 말이 좋아 작가지 방송 제작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일을 대중없이, 전투적으로 하는 전천후 방송 제작 노동자다. 최근 서점가에는 방송작가들의 애환이 담긴 에세이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의 저자 김선영은 14년 차 방송작가다. 저자는 책에서 방송작가로 사는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고 회고한다. 그는 “살얼음판 같은 방송계는 무엇 하나 뚜렷한 일이 없었고 툭 하면 (프로그램이) 없어져 마음을 놓기 힘들었다. 주말이나 명절에도 당연하게 출근했고 휴가를 떠나려면 일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일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깊어질 테니.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나의 진면모를 발견할 테니. 내가 지금 불안한 건 일에 애정을 품고 최선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물론, 누가 내게 다음 생에도 방송작가를 하겠냐고 묻는다면 멱살부터 잡겠지만! -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中

십년 넘게 몸담았던 방송국을 떠나 전업 작가로 홀로서기를 결심한 저자. 유명인들에게만 조명을 비추는 ‘방송용 콘텐츠’가 아닌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저자는 카카오에서 제공하는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방송작가로 일하며 겪은 일들을 연재했고, 연재한 글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냈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끔찍했지만 동시에 행복했던 방송작가의 삶을 복기하며 삶의 크고 작은 의미를 발견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방송작가의 처우는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방송국에 소속된 ‘정규직 PD’와 비교할 때, 방송작가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처참한 수준이다. 그들의 힘겨운 노동현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보도된 바 있다. 책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의 저자 김국시는 6년 차 방송작가다. 그는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다. (중략) 너무 ‘프리’하다 보니 어떤 근로기준법에서도 자유롭다”고 자조한다.

서른 살 겨울, 나는 예상과 달리 어디에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높이 자라지도, 눈에 띄지도 않은 채였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이끼였던 것 같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해 곧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는데 여전히, 조용히, 이곳에 있다. -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中

저자는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해도 대부분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4대 보험? 없다. 연차, 반차, 없다. 일주일 밤을 새우는 한이 있어도 초과근무 수당은 100원도 없다. 새벽에 퇴근하게 되면 가끔 피디의 기분에 따라 택시비 명목으로 만원짜리 한 장 손에 쥐고 가는 날이 있을 뿐”이라며 “그렇지만 일하는 시간만은 정규직 직원과 같거나 길다”고 말한다.

저자가 전하는 짠한 에피소드가 있다. 취준생이 직장인에 대해 갖는 로망 중에 하나는 바로 ‘명함’과 ‘사원증’. 그는 “처음 일한 방송국에서는 심지어 출입 카드도 안 줬다. 사원증을 안 주고 방문증을 주는 거다. 방문증엔 굵게 ‘손님’(visitor)이라고 쓰여 있었다”며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방문증을 목에 걸고 있는 건 좀 민망해서 그 앞에 명함을 살포시 꽃아뒀다”고 말한다. 참고로 이 에피소드의 제목은 ‘만년 손님’이다.

책 『함부로 내 얘기하지 마』의 저자 유희선 역시 방송작가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얘기한다. 저자는 “최저 임금 바닥을 뚫고 시작했던 프리랜서에게 ‘돈’이란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를 위한 생존의 도구였다. 그래서 ‘저축’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흔한 수당 하나도 나에게 해당하는 건 없었다”며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지금도 4대 보험은커녕 퇴직금도 없는 인생이며, 소속감 따위는 애당초 가져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을 맞아 진행한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공식화했다. 바로 다음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특수고용직’을 뺀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만 명시한 특례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지난 12일 문화예술노동연대는 “특수고용직을 배제하고 예술인만 특례 처리한 고용보험을 원한 적이 없다”며 성토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결국 특수고용직을 제외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방송작가들은 근로기준법상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이제 예술인도 가입할 수 있는 고용보험. 하지만 거기에 방송작가를 포함한 166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직의 자리는 없다. 서점가에 울려 퍼지는 방송작가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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