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한국영화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5.1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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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5.18은 알려진 것처럼 광주시민과 전남도민들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2.12 사태’를 촉발시킨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5.18은 분명히 ‘폭동’이나 ‘사태’가 아닌 ‘민주화 운동’이었고,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의 극악무도(極惡無道)함으로 인해 국민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뼈아픈 비극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전두환과 일부 보수 인사들의 망언에 가까운 역사 왜곡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5.18을 오랫동안, 제대로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이미 1980년 5월의 광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고 재현돼 왔다. 특히 5.18은 한국전쟁과 함께 가장 많이 영화의 소재로 호명된 역사적 사건이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필름에 아로새겨진 5.18의 상흔들은 단순히 ‘볼거리’가 아닌 하나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논문 「5.18영화의 전개와 재현양상 연구」의 저자 이현진은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선택하든 주제로 형상화하든, 역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역사를 해석한다”며 “영화는 알려진 혹은 감춰진 역사의 이면과 진실에 접근하려 시도한다. 이는 영화가 현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제작되고 수용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영화가 재현하는 역사는 비록 허구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역사를 정서화시키고 개인화시킴으로써 관객에게 역사를 알리고 환기하며 학습시킨다. 영화의 역사서술 가능성은 이처럼 사실관계의 인과성보다는 역사가 주는 의미의 해석과 접근성에 있다”며 “5.18을 다룬 영화, 즉 5.18영화는 5.18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역사서술 가능성을 분석하는 좋은 사례”라고 말한다.

장선우 감독, 영화 <꽃잎> 스틸컷

장선우의 영화 <꽃잎>(1996)은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영화화한 것으로 광주의 비극으로 인해 정신 이상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녀의 불운한 삶을 그리고 있다. <꽃잎>에 대해 저자는 “5.18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해 정신 이상을 겪는 한 소녀의 고통을 재현함으로써, 시대의 방관자인 ‘우리들’로 하여금 그 날 그 사건의 의미를 되묻는 한편, 앞으로의 길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김지훈 감독,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컷

저자의 논의처럼 <꽃잎>이 5.18을 “형이상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면, 김지훈의 <화려한 휴가>(2007)는 5.18의 전후맥락을 보다 사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데 방점을 맞춘다. 황석영의 증언집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바탕으로 제작된 <화려한 휴가>에 대해 저자는 “적극적으로 5.18과 관련된 기존 영상이미지 자료를 활용하는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잊혀져가던 5.18의 기억을 단번에 되살리는 효과”를 거둔다고 설명한다.

김현석 감독, 영화 <스카우트> 스틸컷

김현석의 <스카우트>(2007)는 당시 광주일고 3학년이었던 선동열을 영입하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간 ‘호창’이라는 인물을 통해 5.18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있다. 저자는 “장르적으로 코미디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영화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스카우트>는 그 시대에 산다는 것만으로 폭력적인 영향을 받고 비굴해지도록 강요받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며, 광주항쟁 자체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동시대인들 모두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강상우 감독, 영화 <김군> 스틸컷
이창동 감독, 영화 <박하사탕> 스틸컷

이 외에도 5.18을 소재로 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장훈의 <택시 운전사>(2017), 한 보수 인사의 5.18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다큐멘터리로 훌륭하게 반박한 강상우의 <김군>(2019),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일생을 무참하게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독특한 영화적 방식으로 보여준 이창동의 <박하사탕>(2000) 등이 5.18영화로서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5.18영화는 5.18을 해석하고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로 파악할 수 있다. 그는 “5.18영화는 시대의 환경 변화 속에서 침묵해야만 했던 5.18을 대중에게 알리고, 잊혀져가는 5.18을 환기시키며 학습하는 기능을 담당했다”며 “때로는 예술가의 사회적·역사적 책무감에서, 때로는 상업적인 목적에서 5.18영화는 역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앞선 언급처럼 5.18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역사’다. 그 이유는 5.18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5.18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0년 5월 18일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5.18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5.18영화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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