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드라마·영화 속 여배우들의 마음을 종위 위에 담아낸 청춘 서예가의 에세이 
[포토인북] 드라마·영화 속 여배우들의 마음을 종위 위에 담아낸 청춘 서예가의 에세이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5.13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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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갓 서른의 청년 서예가 인중 이정화가 쓴 책이다. 서예가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에 붓을 잡은 그는 경기대학교 서예문자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서예문자예술학 석사를 취득했다. 지난 10여년 간 서예 대필로 방송 출연도 잦았는데, tvN '미스터 션샤인' MBC '신입사관 구혜령' 영화 '도리화가' 등에 출연했고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서예의 가치를 설파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서예는 단지 좋은 글귀를 따다 쓰며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오히려 넓고 깊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친구에 가깝다. 그는 "독자 역시 그런 친구를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에 붓이 아닌 키보드를 잡았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  

[사진=도서출판 달꽃]
[사진=도서출판 달꽃]

드라마와 영화에서 서예 자문을 맡으면서도, 21세기 예술가로 활동하시는 아버지의 붓은 30년이 넘도록 하루에도 몇 번씩 타임슬립을 한다. 사극 드라마와 영화 속 글씨들을 재현해 내기 위해서 조선 시대로 갔다가, 현시대의 사람들의 감성에 맞는 글씨를 쓰기 위해서 디지털시대로 넘어오신다. (중략) 내가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할 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딱 하나다. 자외구서, 글자 밖에서 글씨를 구해라. 글자 안에 갇힌 마음을 더 깊고 멀리 꺼내는 것. 기본기가 다져진 이후로는 책상 안에서만 글자를 보지 말고, 고목의 나뭇가지에서 서예의 장엄한 획을 찾고, 흐르는 물의 움직임을 보면서 유려한 선을 찾아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붓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하라고 하셨다. <43~44쪽> 

[사진=도서출판 달꽃]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작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오히려 작품을 깎아내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관람자들에게 생각의 여유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이기에, 그래서 작품의 제목 역시 '무제'인 경우도 더러 있다. 나 역시 그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학부 시절 "작가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작품을 어필하라"는 디자인과 교수님의 아주 반대의 말씀이 가슴 깊에 와 닿았던 적이 있었다. (중략)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니 서예는 글자를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중과 많은 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조금 더 솔직하지 못하고, 친절하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69~70쪽>

[사진=도서출판 달꽃]

책에 있는 좋은 시들을 옮겨 적는 것만이 서예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땅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와 시멘트 사이에 꼿꼿하게 피어있는 꽃들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거닐어 가는 사람들까지 그 속에 있는 진정한 예술들을 종이 위에 붓끝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109쪽>

[사진=도서출판 달꽃]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을 때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맑은 마음'을 최우선으로 지키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주일간 빛을 받고 아름다움을 내뿜었지만, 전시가 끝나면 내 방 한구석에서 먼지나 먹게 될 운명을 바라보는 것도 "쓰다가 망친 작품 있으면 나를 달라"는 농담을 듣는 것도, 서예를 한다는 나만 보면 무작정 "좌우명 한 번만 그냥 대충 써서 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실없이 웃는 것도, 반강제적으로 작품을 가져가면서 "너무 고마우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먹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차라리 밥값을 돈으로 줬으면 싶은 괴로운 생각까지. 그런 생각이 하나 둘 손을 들고 일어나면 마음에 먼지가 쌓여서 '맑은 마음'이 점점 탁탁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150쪽>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이정화 지음 | 달꽃 펴냄│218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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