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경비원의 죽음과 ‘폭행·협박’ 의혹... “죽으려고 경비를 했겠습니까”
선량한 경비원의 죽음과 ‘폭행·협박’ 의혹... “죽으려고 경비를 했겠습니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5.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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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경비원이 근무했던 서울 강북구 내 아파트 단지의 경비실에 입주민들이 제사장과 편지를 가져다 놓았다. [사진=연합뉴스]
아파트 경비원 최씨가 근무했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11일 분향소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 A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경비원은 생전, 입주민들과 유대관계가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인지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은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비원 최씨와 입주민 A씨 사이의 불화는 지난달 21일 발생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께 최씨가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이중주차된 차량을 밀어 옮기는 과정에서 입주민 A씨가 항의하며 최씨를 밀쳤고, 이 장면은 CCTV에 모두 담겼다. 큰소리로 실랑이를 벌이던 A씨는 이후 최씨를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해고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숨진 경비원이 근무했던 경비실 내 모습. [사진=연합뉴스]
숨진 경비원이 근무했던 경비실 내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족들에 따르면 이후에도 A씨의 강압적 행동은 지속됐다. ‘A씨가 CCTV가 없는 경비실 내 화장실에서 (해고를 염려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최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했다’는 주장. 결국 최초 사건 발생 7일 뒤인 지난달 28일 최씨는 A씨를 폭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오히려 A씨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테니 몇천만원을 준비해 두라” “(최씨가 밀쳐서) 수술비만 2,000만원이 넘고 장애인 등록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힘들어하던 최씨는 아파트 단지에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입주민들의 설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입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최씨의 코뼈는 부러져 내려앉았고, 발등뼈에 금이 간 상황이었다. 이후 최씨는 입주민들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으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며 지난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과 다수 입주민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A씨의 폭행과 협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최씨가 목숨을 끊은 상황.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관련 혐의를 일절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씨와의 갈등에 관해 “최씨가 처음 아파트에 입사했을 때 슬리퍼 신은 복장을 지적했는데, 그 이후로 억하심정이 있는지 유독 내 자동차의 이중주차만 문제 삼았다”며 “사건 당일에도 (최씨가) 차를 밀었고, 이를 말리자 위협하듯 내 쪽으로 차를 밀어 시비가 붙은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다수의 입주자는 A씨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글에서 자신을 해당 아파트 입주민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사망한 경비 노동자는) 입주민을 자기 가족처럼 대해주셨다. 아침마다 인사를 해주시며 출근길에 웃음을 주시는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며 “이중주차로 인해 자기 차를 밀었다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근무시간마다 와서 때리고 욕하고 매번 폭언으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가슴이 찢어진다. 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토로했다. 해당 청원은 12일 기준으로 10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또한 최씨가 근무했던 경비실 앞에는 입주민들이 마련한 제사장과 함께 최씨를 기리는 편지 등이 가득한 상황이다.

경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 약자로 자리하는 것이 사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일상을 담은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를 펴낸 현직 경비 노동자 조정진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 책 77페이지에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오래된 아파트... 이중 삼중 주차... 폭언, 폭행...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는 설움. 살아보고자 아파트 경비를 했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습니까?”라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살피고 헤아려 주십시오”라고 밝혔다.

로마 제국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노예의 눈을 바늘로 파내라고 명령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얼마 후,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으나 “제 눈을 원래대로 되돌려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전부입니다”라는 노예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눈을 회복시켜줄 순 없듯, 제아무리 대단한 입주민이라도 최씨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는 법.

A씨는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씨가 유서를 통해 A씨로 인해 고통받다가 목숨을 끊었다고 밝힌 상황. A씨는 경비 노동자 최씨의 행동에 왜 불만을 품게 됐을까? 혹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 우월의식은 아니었을까? 안광복 임상철학자는 책 『철학으로 휴식하라』에서 “분노와 화는 언제든 나를 덮칠 수 있는 광기다. 여기에 휘둘리는 상황은 내 인생에 회복 못 할 재앙이 되곤 한다”고 말한다. 재앙의 결과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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