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낙인‧혐오 프레임… “누구를 위한 보도인가?”
언론의 낙인‧혐오 프레임… “누구를 위한 보도인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5.11 16: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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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보건소 관계자들이 이태원 유흥밀집 거리를 방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서울 이태원 클럽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해당 이태원 클럽이 성소수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아웃팅’(outing :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강제로 밝혀지는 일) 및 성소수자 혐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 7일 한 언론의 ‘이태원 게이 클럽에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갔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면서부터다. ‘게이 클럽’이라는 명칭은 ‘구체적 상호’가 아닌 ‘공간의 성격’을 특정 짓는 것으로 방역과는 무관한 정보다. 하지만 해당 언론의 기사를 수많은 언론이 받아쓰고, 방문자들의 신상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공유되면서 아웃팅 및 성소수자 혐오가 더욱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는 “감염인은 취재만으로도 차별 및 낙인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감염인과 가족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감염병 보도의 기본원칙과 권고 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이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도로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문제는 방역과 상관없는 확진자의 신상명세가 노출됐다는 것”이라며 “방역 정보와 아무 상관 없이 확진자가 지나간 장소로 게이 클럽을 굳이 명명(했다)”고 성토했다. 이어 “질병 예방은 확진자가 치료를 잘 받고 질병에 노출된 이들이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낙인과 혐오는 해악으로 작동할 뿐”이라고 밝혔다.

언론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보도할 때,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경계하며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의 기본이다. 지난 2009년 ‘용산 참사’ 당시 일부 언론들이 경찰의 강경한 진압 대신 시위대의 폭력적인 행동만 부각해 철거민들의 ‘진짜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는 故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뒤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는데, 당시 일부 언론들이 ‘물대포’를 ‘물줄기’와 ‘물’로 바꿔 표현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를 내보냈다.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아 사람이 중태에 빠졌는데, “물줄기(혹은 물)에 맞아”라는 표현을 사용해 권력자들의 눈치를 본 것. 물줄기의 사전적 정의는 “물이 한데 모여 개천이나 강으로 흘러 나가는 줄기”를 말한다.

논문 「프레임 경쟁에 따른 언론의 보도 전략」의 저자 이상률은 “프레임(frame)은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공공 담론을 반영하는 해석적 틀이다. 뉴스 내에서 공공담론을 반영한 각각의 프레임들은 사안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형성하는 가치 및 해석들을 내포하고, 다양한 사회 세력들 간의 갈등 사이에서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며 “뉴스 프레임에는 소속 집단의 주장과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 집단들의 전략들이 반영된다”고 설명한다.

이번 이태원 클럽의 코로나19 관련 보도들은 마치 성소수자들이 코로나19를 퍼뜨리고 다니는 ‘오염 집단’으로 오인하게 하는 등 혐오 프레임을 씌우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낳게 돼 특히 문제가 된다.

책 『저널리즘의 미래』의 저자 이정환은 우리나라 언론이 “소수자 문제에 무감각”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터넷 매체 <ㅍㅍㅅㅅ>의 필자 윤지만의 논의를 인용, “미국 언론에 비해 한국 언론은 성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무신경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 언론은 철저하게 ‘다수’ 대중 입장에서 소재를 다뤄 소수자가 봤을 때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말처럼 언론의 무(無)감수성이 소수자에게는 ‘흉기’가 될 수 있다. 편견에 휩싸이지 않은 정확한 용어로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특정 집단에 모종의 프레임을 씌우고, 특정 단어를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해 보도하는 것은 분명 지양돼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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