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놀라운 건 바로 이 작품이 그의 첫 장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병운 작가는 앞으로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의 작품 앞에 수식어로 내어 줄 것이라는 확신도 덧붙여 준다.” 소설가 김봉곤의 추천사가 빈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표현력이 발군이다. 클리셰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은 신선한 빗겨나감들은 등장인물의 모든 행동과 말에서 신선한 의미를 찾아낸다.
이야기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배우 활동을 하는 공상표(본명 강은성)를 중심으로 흐른다. 공상표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과거 연인을 제외한 모두에게 철저히 숨기는데, 그것이 자신의 어머니를 실망케 하고 자신의 앞길을 망칠까 봐 두려워서다. 사회는 성소수자를 엄청난 변태 정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공상표는 급기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게 된다.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사건은 이태원 게이 클럽 방화사건이다. 헤어진 연인 김영우가 이 방화 사건으로 숨지고 공상표에게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지만, 그 남자는 우리가 자신을 증오할 때마다 그 감정을 먹이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런 고약한 괴물 같은 존재인 거라고요.”(255쪽) 방화범이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에 공상표는 자신 역시 방화범과 마찬가지로 스스로와 타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살해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상표는 인터뷰를 통해 커밍아웃을 감행한다. 살기 위해서, 또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속이 텅 빈 배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꾸 쓰고 말해서 우리가 우리를 수치스러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거라고, 결국 내가 문제고 내가 잘못됐고 나만 사라지면 된다고 결론짓는 일을 끝내고 싶은 거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더라도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나를 죽이면서까지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한다는 걸 알아요. 저 자신에게는 물론, 제가 앞으로 연기할 인물들, 더 나아가 그걸 지켜볼 관객들에게도요”라고 말한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성소수자들이여,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은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성소수자들 역시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혐오하는 이들이여, 당신의 게으름으로부터 비롯된 무지는 누군가를 죽도록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