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보이차 애호가라면 알아야 할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
[지대폼장] 보이차 애호가라면 알아야 할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5.09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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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보이차는 흙수저 출신이다. 고향은 옛날에 중국 사람들이 ‘야만한 땅’이라고 낮잡아 불렀던 운남성,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차나무가 자란 곳이다. 빙하기도 견뎌냈던 이곳의 차나무들은 키가 크고 맛이 강하고 쓰고 떫다. 이런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는 녹차나 홍차처럼 향기롭지도 상큼하지도 않다. 게다가 예전에는 가공기술도 떨어져서 차 좀 안다는 사람들이 ‘차에서 풀 비린내가 난다. 물 마시는 것보다 조금 낫다’며 형편없는 차 취급을 했다. 그랬던 것이 청나라 때는 황실의 최고 아이템이 됐다. 

황제가 보이차가 좋다고 직접 시를 쓰고 영국에서 건너온 사신에게 많은 양의 보이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비단 치마를 입은 꽃 같은 아가씨들도 항아리에 흰 눈을 담아두었다가 다음 해 그 눈 녹은 물로 보이차를 끓였다.(<홍루몽>에 나오는 이야기다. 얼마나 낭만적인지, 대기오염이 아니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다.)

황제와 외국 사신과 귀족 아가씨들 같은 상류층 사람들만 보이차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상류층은 어린잎으로 만든 고급 보이차를 마셨고,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은 거친 잎으로 만든 차를 마셨다. 보이차는 국경 너머 티베트에도 갔다. 티베트 사람들은 ‘식량 없이 3일은 살아도 차 없이는 못 산다’며 블랙홀처럼 보이차를 빨아들였다. 이어 홍콩에도 갔는데 거기서는 홍콩 사람의 영혼의 식품이 됐다. 홍콩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이만 닦고 차루(茶樓)에 가서 딤섬에 곁들여 보이차를 마셨다.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 김치에 향수를 느끼듯 홍콩 사람들은 보이차에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보이차는 왜 이렇게 성공했을까? 그 요소를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구매력 좋은 고객 덕분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언제나 차에 목말라 했다. 그들이 차를 좋아한 것은 고상하고 우아한 취향 때문이 아니었다. 유목 생활 탓에 육식만 하는 티베트 사람들이 늘 시달리던 육체적인 고통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차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차를 마셨다. 중국 내지와 홍콩의 수요도 대단했다. 보이차는 만드는 대로 다 팔리는,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차였다. 

둘째는 보이차 산업에 종사한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원료를 수매해서 보이차를 만들고 완성된 차를 소비지까지 운송했다. 그런 개인 사업체를 차장이라고 했는데, 차장은 청나라 말부터 중화민국 시기에 보이차 산업을 주도한 핵심 세력이었다. 그들은 좋은 원료로 고급 보이차를 만들어 중국 내지에 공급하고, 그보다 못한 원료로 만든 차는 홍콩에 보내고, 너무 거칠어서 골라낸 큰 잎과 두꺼운 줄기로 만든 차는 티베트에 보냈다. 영리하게도 여러 지역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하고 그에 딱 맞는 차를 만들어 팔았다. 그들은 보이차 사업으로 대단한 부를 이루었다.  

『처음 읽는 보이차 경제사』
신정현 지음│나무발전소 펴냄│368쪽│20,0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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