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따끈한 신작소설 속 아주 뜨거운 질문들
[니가 사는 그책] 따끈한 신작소설 속 아주 뜨거운 질문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5.06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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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대형서점 매대에 누워 있는 따끈따끈한 신작 소설들. 그런데 이 소설들을 펼치면 정말로 체온이 올라간다. 각 소설 속 숨겨져 있는 매서운 질문들이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 때문이다. 『미니어처 하우스』 『칵테일, 러브, 좀비』 『GV 빌런 고태경』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에 담긴 뜨거운 질문들을 소개한다.

#사랑한다면_그래야_하지_않을까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은재)과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나)을 집에 버려두고 세 번째 남편이 될 남자친구와 사는 엄마와, 자신의 병을 숨기고 가출해버린 언니(은재)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해라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거야. 설령 그게 평생 함께해온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나는 왠지 반발심이 생긴다. “우리가 가족이야?” “그게 무슨 말이니?” “우리 집엔 이제 엄마 방도 없거든.” 아무리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회피하지 말고 그 이해할 수 없음까지도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단편집 『미니어처 하우스』의 표제작 「미니어처 하우스」(김아정)는 독자에게 진정한 이해와 사랑의 자세를 묻는다. 

#핑계대다가_좀비_된다

“주는 술을 왜 다 마셔! 적당히 마시고 거절해야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국밥집에서 준 뱀술을 마시고 좀비가 돼버린 아빠. 생각해보면 아빠는 핑계를 대지 않은 적이 없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으로 돈을 날렸을 때도, 일주일 만에 외출한 엄마를 보고 남들 앞에서 여편네 팔자 좋다고 비아냥거렸을 때도, 울면서 화내는 엄마에게 주연이 여행 가서 사 온 코끼리 목상을 던졌을 때도, 웬 여자의 전화번호를 친하지도 않은 큰 고모부 이름으로 저장해 놓은 걸 들켰을 때도. 

“아빠가 하던 말의 결과를 봐. 좀비가 되었잖아.” 주연은 평생에 걸친 아빠의 핑계가 결국 아빠를 좀비로 만들었다고 결론짓는다. 『칵테일, 러브, 좀비』의 표제작 「칵테일, 러브, 좀비」(조예은)는 30cm 뱀으로 담근 술로 인해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독특한 상황 속에 이런 질문을 숨겨놓는다. 당신도 매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좀비처럼 속이 비어있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린_왜_미워하게_됐을까

“이게 더 인기 있어. 자극적일수록 조회수가 나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돈도 되고.” 윤미는 시니컬하게 덧붙인다. “그게 더 잘 팔리는 세상이니까.” 윤미는 한때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하던 사람이지만, 이제는 영화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유튜버가 돼버린 인물. 이제 그는 어떤 영화를 보면 어떻게 조롱하면 좋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윤미를 보며, 가난한 삶을 이어나가면서도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 혜나는 서글퍼진다. “그래. 어떤 것에 대한 사랑보다는 조롱과 냉소가 더 쉬우니까.” 

그러나 혜나는 곧 윤미를 이해한다. 윤미가 영화를 포기하고 심지어 싫어하게 된 이유를, 존경하던 감독으로부터 욕설을 들어가며, 가혹한 연속 밤샘 촬영을 견디며, 있는 돈 없는 돈 아껴가며 도전했던 영화인으로서의 윤미의 삶이 너무나 가혹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잘하고 싶었는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콘티도 열심히 그렸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게 될까.” 『GV 빌런 고태경』(정대건)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꿈을 위해 유예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과 그 인생이 너무 힘들어 포기한 사람들을 동시에 품는다. 

#쓸데없는데_책은_왜_읽어

노인들의 책 읽기는 그 어떤 실용적 가치도 없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말할 시간이 없고, 그들이 읽은 것은 그들의 정신과 육체처럼 모래와 먼지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하는 도서관 사서, 그런데 레나 문(LM)은 조금 생각을 달리한다. 

“그녀(LM)는 삶은 언제까지나 충실한 순간의 연속이고 우리 안에 아직 아이가 있듯 노인의 안에도 여전히 젊음이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그러면 그들이 읽은 건 모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읽은 게 꼭 어디로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자기 생각에는 읽고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며 그러다 어떤 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는 이렇게 독서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독서는 꼭 실용적이지 않아도, 인생이 짧고 유한하더라도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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