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기본소득, 왜 필요할까? 『무조건 기본소득』
[책 속 명문장] 기본소득, 왜 필요할까? 『무조건 기본소득』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4.30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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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이 책은 기본소득을 축으로, 오늘날 노동 인구가 자기 삶을 되찾는 데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정책과 수단을 탐구하기 위한 책이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은 신성화 된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등대로 기능할 수는 있다. 실제로 기본소득이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는 특징은 삶이란 상품이 아니라는 점을, 선을 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듯 기본소득이라는 제안은 우리가 자유로운 주체이자 집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필요한, 매우 다양한 성질의 상징적 장치와 물질적 환경으로 구현된 사회정치적 국가들을 상상해보는 전도유망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쪽> 

시선을 견디는 것, 강하게 버티는 것은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관계를 시작할지(계약서에 서명할지) 말지를 협상할 수 있다는 것, 사회관계를 시작할 경우에는 그 관계의, 그 계약의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보면, 지금 묘사하는 이 상황에는 이혼과 분명 비슷한 점들이 있다. 이혼할 권리는 이혼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관계가 망가졌을 때 이혼할 수 있게 하는 권리며, 더 중요하게는 양측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탈출구가 있음을 확실히 경고하게 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권리로, 상대방이 내 목소리를 들을 가능성을 키운다. <32쪽> 

불공정함이 아니었더라면 선의도 생겨나지 않았으리라. 따라서 착한 러너들로 팀을 꾸린다는 계획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수치스러울뿐더러, 뼛속 깊이 불평등한 재산권의 분배에서 기인한 특권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공유 자원의 약탈과 몰수가 먼저 자행되지 않았더라면 자선도 없기에, 모든 사람의 존엄한 삶을 위한 몇몇 자원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공공정책들과 조세 체계를 통해 ‘몰수자들에게서 몰수’해야 한다고, 마르크스 이전에 칸트가 이미 주장한 바 있다. (중략) 따라서 좋은 삶은 자비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 칸트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보장된다. 즉 침해당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로 무장시켜, 강요에 따른 제한이나 속박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좋은 삶이 보장된다. <113~114쪽> 

공화주의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란 간섭할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노예나 임금노동자나 앞에 언급한 처지의 여성 모두 누군가에게 사회경제적으로 의존하므로, 결국 시민으로서도 의존하게 되는 처지라 몹시 취약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이 의존하는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결정에 따라 전혀 자기 것이 아닌 이익과 가치와 절차에 따라 행동하고 살도록 강요받는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판단이 명확히 서지 않을 때일지라도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는데, 자기검열을 거친다고 해도 결국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행동이 자동적이고 관성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118~119쪽> 

『무조건 기본소득』
다비드 카사사스 지음 | 구유 옮김 | 리얼부커스 펴냄│332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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