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성욕 억제 물고기 '청어'가 일으킨 욕망의 세계사 
[포토인북] 성욕 억제 물고기 '청어'가 일으킨 욕망의 세계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4.29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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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육류를 '뜨거운 고기'라 해서 엄격히 금지했다. 인간의 마음에 성욕이 불갈이 일어나게 해 죄를 짓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고기를 아예 먹지 않을 수 없었기에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생선이다. 생선은 '차가운 고기'라고 해서 성욕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식량으로 사용된 물고기 청어. 하지만 이 청아가 오히려 더 큰 경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꿨는데, 이 자세한 이야기가 책에 담겼다. 

고대에 바이킹이 생선을 요리하는 장면을 재연함.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고대에 바이킹이 생선을 요리하는 장면을 재연함.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바이킹은 해안이 후미져 들어간 만에 주로 살았다. 그들이 터를 잡고 산 땅은 환경이 열악하고 토지가 척박해 농업과 목축에 적합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의 주요 식량은 농작물이나 육류가 아닌 어류와 해산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청어와 대구가 특히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토인에 따르면 10세기 무렵 바이킹의 잉글랜드 습격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갑자기 농업생산량이 향상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청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청어 풍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상태가 10세기 말까지 이어지다가 어느 시점부터 바이킹이 기지개를 켜고 다시 정복 활동에 나섰다. 바이킹의 활동 재개 역시 청어 때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녀석의 회유 경로가 서쪽으로 이동한 까닭이다. <26~27쪽> 

뤼베크의 항구를 묘사한 아돌프 보크의 그림.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뤼베크의 항구를 묘사한 아돌프 보크의 그림.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뤼베크는 어떻게 교역 중심지로 발달할 수 있었을까? 뤼베크에는 두 해협의 중간지점이라는 천연의 지리적 이점 이외에도 또 다른 이점이 있었다. 바로 청어 떼가 주기적으로 몰려온다는 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뤼베크 바다 건너 맞은편의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단에 있는 스코네 지방과 뤼베크 동쪽의 뤼겐섬 연안, 그리고 남서쪽의 암염 산지인 뤼네부르크에 엄청난 규모의 청어 떼가 몰려왔다. 이는 11세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 두 가지 입지 조건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뤼베크는 독일과 유럽의 주요 도시로 성장했고 청어 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 무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33~34쪽>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에서 겨울철 대구를 말려 스톡피시를 만드는 장면.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에서 겨울철 대구를 말려 스톡피시를 만드는 장면.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스톡피시는 뛰어난 보존성이 장점이다. 심지어 소금에 절인 청어와 비교해도 보존 기간이 훨씬 길다. 통상 소금에 절인 청어의 유통기한이 1년 정도인 데 반해 스톡피시의 경우 보존 상태가 좋으면 5년도 넘게 보관할 수 있다. 게다가 수분을 빼고 바짝 말린 덕분에 무게가 가볍고 부피도 적다. 이런 장점 덕분에 스톡피시는 먼 바다로 항해할 때 비상식량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중략) 14세기 중반에 한자동맹은 스톡피시 무역을 독점했다. 이 독점이 노르웨이 왕국과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스톡피시 덕분에 국제무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다. <141~146쪽> 

18세기 뉴펀들랜드에서 대구를 소금에 절이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18세기 뉴펀들랜드에서 대구를 소금에 절이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 [사진=도서출판 사람과나무사이]

신항로 개척시대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나? 아마도 대다수 사람이 '황금'이나 '보물' '향신료' 등의 화려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나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가 없었더라면 신항로 개척시대가 그 정도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리라 추정하는 연구자가 많다. 마치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스톡피시가 바이킹의 뛰어난 항해 능력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줬듯 말이다. (중략) 네덜란드인도 스페인인도 포르투갈인도 뉴펀들랜드의 생선 대구가 없었다면 서인도제도에 단 한 척의 배도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소금에 절여 볕에 말린 생선 이외에 상하지 않고 적도를 넘은 생선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8~149쪽>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오치 도시유키 지음 |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펴냄│312쪽│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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