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현실과 맞서야 하는 인문학의 사명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
[책 속 명문장] 현실과 맞서야 하는 인문학의 사명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4.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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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작가가 계약서를 넘어선 문학을 지향해야 하는 까닭은 본질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씨의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소식은 언론을 통해 곧장 알려졌다. 작가라는 이유로 자신의 부당한 처우를 조용히 감내해야 할 까닭이 있을 리 없으니, 이들 작가들의 거부 선언이 공론화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문학이란 특수와 보편이 통일되는 지점에서 성립하는 것. 그렇다면 이상문학상의 불공정한 계약 사항은 이상문학상이라는 틀 속에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불공정 계약 관행과의 중첩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다 문학의 자리에 합당한 것이 아닐까.<25~26쪽>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지. 펜대를 굴리며 사는 사람과 몸뚱이를 굴리며 사는 사람. 오늘 같은 날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도 덥다고 하는 사람들은 펜대를 굴리며 사는 사람이고, 나는 몸뚱이를 굴리며 사는 사람이야.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새삼스럽게 누굴 탓할 일도 아니지. 넌 아비 잘못 만나 그 고생이지만. 공부하라는 이유가 거기 있어. 나처럼 살지 마라는 거야.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만약 네가 펜대 굴리며 살게 된다면 말이야.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나 잊지 않으면 돼. 나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절반보다도 훨씬 더 되는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단 말이야. 그걸 알아야 스스로 행복한 줄 알지. 함부로 남을 무시하지도 않을 테고. 자, 난 이제 맥주 먹을 거니까, 넌 지금 가서 네가 좋아하는 통닭이나 한 마리 사 와라. 빨리 먹고 일찍 자야 내일 아침에 늦지 않지.<59쪽>

어느 한 시인의 우발적 죽음을 필연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그 사회가 처한 조건과 관계 맺는다. 즉, 사회의 은연중에 유포돼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와 『입 속의 검은 잎』)의 죽음과 공명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공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기형도의 죽음은 우리 문학계에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는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신탁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 수밖에 없었던 오이디푸스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폐쇄회로 안에서 서로의 도저한 절망을 애처롭게 확인하는 문학의 선조(先祖)로서 기형도가 자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120쪽>

『문학의 창에 비친 한국 사회』
홍기돈 지음│삶창 펴냄│248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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