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밤은 부드러워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밤은 부드러워
  • 스미레
  • 승인 2020.04.27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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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아이 옆에선 엄마 생각이 난다. 겁이 많은 나를 위해 엄마는 밤늦게까지 내 방에 계셨는데, 늦은 밤에도 늘 책을 읽거나 헤드폰을 끼고 피아노를 치셨다. 재봉틀로 고운 옷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스탠드 불빛 아래 책장 넘어가는 소리, 외국어 되뇌이는 소리, 헤드폰 너머 아득한 전자 피아노 소리, 재봉틀 소리 같은 것들을 덮고 잠이 들었다. 까무룩 잠들며 바라본 엄마의 얼굴이 환했다. 어른들은 밤에도 할 일이 많구나, 어린 나는 엄마의 하얀 밤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의 잠 없는 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엄마가 된 후 가장 먼저 잘라내야 할 것은 잠이었다. 나의 엄마가 그랬고, 나의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잠을 밀어내고 밤을 알차게 보내고 싶었지만 몇 년째 실패 중이다. 피곤에 절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밤. 주로 하릴없이 인터넷을 뒤적이다 잠든다. 책이라도 좀 읽으면 다행이고.

그 시간에 잘 걸 하는 생각은 거울을 볼 때만 잠시 스친다. 눈 아래 그늘이 생겼고 입술은 보기 싫게 텄다. 일찍 자야 하는데. 그러기엔 이미 밤만 기다리며 사는 삶이 되어버렸다.

잠든 아이를 확인하고 몰래 방에서 나와 소파에 잠기는 건 내게 허락된 최고의 보상이었다. 마침내 집에 온 기분이랄까. 그러나 뭘 하기엔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각. 습관처럼 만만한 핸드폰이나 육아서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극은 일시적으로 도파민을 분출하여 피곤을 키울 뿐이었다. 쉰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고, 잠깐 본다는 게 새벽 3시를 넘기 일쑤였다. 

더 큰 문제는 아침이었다. 매일 어젯밤을 후회하며 깨어났다. 눈을 떠도 머릿속이 뿌옇고 뜨거웠다. 아이가 하는 말은 분명히 한국말인데 해석이 안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질 때 쯤 알게 되었다.

내겐 ‘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날부터 핸드폰이나 책을 볼 때 타이머를 설정해 놓았다. 특히 인터넷 쇼핑과 SNS는 에너지 뱀파이어이기에 핸드폰 배터리가 조금 남았을 때만 하기로 했다. 조금만 지나면 알아서 꺼질 테니까.

나처럼 쉽게 지치는 사람은 자신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충전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쉬려다 더 지쳐버리는 일이 생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봐야 한다. 충전 시간마저 근사하게 보내고 자랑해야 할 것만 같은 요즘, 쉴 때조차 자꾸만 여기 아닌 어딘가로 밀려나고 지금 쥔 것보다 더 많은 걸 쥐려 하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엄마는 아이가 잠들면 무조건 같이 자야 한다’는 말에는 백 프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일찍 잠들고 잘 자는 게 중요함을 잘 안다. 실제로도 그렇다. 육아는 잠과의 싸움이니까.

하지만 육아기의 무기력증과 우울감은 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면, 털고 일어나 뭐라도 하는 게 나았다. 기어코 자겠다는 결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 하얀 밤의 기억이 몇 개 있다. 너무 읽고 싶은 소설이 생겼을 때, 몇 날 밤을 샜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기에 즐거웠고, 의외로 몸도 가벼웠다. 그때 난생처음 밤샘이란 걸 해봤다. 한창때도 밤은 못 새어봤는데, 대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싶다.

나는 밤의 고요함을 연모하는 사람이다. 일찍 잠드는 날만큼‘애 엄마가 안자고 뭐 해?’란 말을 잊는 날도 내겐 필요하다. 시공을 초월하는 몰입은 내향인의 마음을 환히 비추는 빛이다.

혼자만의 밤은 부드럽고, 때로는 잠보다 귀한 것들이 있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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