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타파의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
권력형 성범죄 타파의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4.27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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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지난 23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은 여직원을 업무상의 이유로 호출,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여권 인사의 이러한 ‘권력형 성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들 수 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9년, 자신의 비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아니, 그 전에 권력형 성범죄란 무엇인가? 논문 「권력형 성범죄의 실태와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지원」의 저자 오혜령에 따르면, 권력형 성범죄는 “집단 안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자가 그러지 못한 피해자에게 가하는 성범죄”를 말한다. 이어 저자는 “같은 집단 안에서 권력형 가해자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는 가해행위를 명백히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 다닐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말처럼 권력형 성범죄란 특정 조직 내의 권력자가 자신의 위계를 이용해 부하 직원에게 신체적·정신적 성폭력을 가하는 것으로써 대부분의 가해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남성 피의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합의’나 ‘동의’ 같은 말을 내세우는데, 사건이 불거졌을 때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대응하며 ‘일방적 성범죄’를 ‘남녀관계’의 문제로 물타기 해 더 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의 권력형 성범죄는 피해자의 폭로나 가해자의 자발적 반성이 없으면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성범죄의 특성상 은밀히 행해질 때가 많고, 기습적 상황에 발생해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피해자의 진술마저도 권력형 가해자의 위세에 눌려 집단 내 열위의 지위조차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명쾌하게 밝히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서두에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권력형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비(非)권력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권력자의 폭력적인 태도에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사생활 영역에서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의 공동 저자 한채윤은 「성적 자기결정권은 왜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로 해석”해야 함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저자는 “성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폭력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정조권(성적 순결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법률상의 보호) 관점에서는 가해자는 오로지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다. 남성이 패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게 하며, 동성 간 성폭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 “여성이 목숨을 걸고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맞거나 다친 흔적이 남아 있어야 거부했다는 것이 인정되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 저항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며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위한 선택은 할 수 없게 한다. 다시 말해, 편견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사회구조를 비판하기 위해 (성폭력 문제를) 성적 자기결정권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를 『춘향전』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그 누가 암행어사가 돼 온다고 해도 단 한 가지만 살펴보면 된다. 춘향이가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학도가 계속 강요를 했는지 여부”라며 “동의하게 하려고 협박하고 때렸는지, 변학도가 자기 지위를 이용해 춘향이를 억지로 관아에 오게 한 뒤, 부당한 요구를 하고 괴롭혔는지 여부만을 조사하고 판단하면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저자의 말처럼 춘향이에겐 이몽룡에 대한 정조를 지키는 것 혹은 그 여부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변학도가 춘향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만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이어 저자는 “사실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마음만 있었다면 변학도도 감히 춘향이를 처음부터 자기 마음대로 오라가라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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