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온전한 공감과 이해의 발견 『녹나무의 파수꾼』
[리뷰] 온전한 공감과 이해의 발견 『녹나무의 파수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16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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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내가 네 머릿속에 한번 들어가 보는 게 소원이다.”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들의 머릿속에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 한다. 혹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 소설은 이러한 결핍을 충족한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선물한 씨앗에서 밤새 쑥쑥 자라는 소원 비는 거대한 나무, 키 20m에 둘레 8m 이상까지 자란다는 일본의 가장 큰 나무, 녹나무가 이 소설에서는 그 소원을 이뤄준다. 다른 사람을 내 머릿속에 들어오게 하고, 혹은 내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한다. 녹나무 안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의식(‘예념’과 ‘수념’)을 통해서다. 

예념과 수념은 일종의 유언을 남기고(유념) 받는(수념) 행위다. 그런데 혈연에게만 허락된 이 마법 같은 유언은 유언을 받는 이에게 유언자의 생각과 마음을 “통째로 드러내” 전달한다. 사념이나 잡념, 좋지 않은 생각, 악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다. 

미스터리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기에 세 가지 미스터리를 담고, 그것을 녹나무의 마법으로 풀어낸다. 첫 번째 미스터리는 바람을 피우는 듯한 유미의 아버지가 녹나무 안에서 들어본 적 없는 기묘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 두 번째는 기업을 이어받을 소키가 어쩐지 아무리 시도해도 아버지의 유념을 받지 못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주인공 레이코에게 생전 모르고 살던 손위 이모가 혈육이라며 찾아와 녹나무의 파수꾼 역할을 맡기는 장면.      

녹나무를 통해 유미와 소키, 레이코는 각각 그들의 아버지와 손위 이모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들의 따듯한 생각과 마음, 신념을 체감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줄로만 알았던 유미의 아버지는 사실 사망한 형이 남긴 피아노곡을 녹나무로부터 받아 완성하고 있었다. 소키는 혈육이 아니기에 애초에 수념할 자격이 없었으나 수념 없이도 녹나무를 통해 아버지의 진의(眞義)를 깨닫고, 레이코는 사람들 앞에서 녹나무로부터 받은 이모의 신념을 대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녹나무의 파수꾼’직을 받아들인 레이코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보전하고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선언한 『호밀밭의 파수꾼』(J.D.셀린저)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앞으로도 전승되는 순수한 신념들을 지키고자 한다. 소설은 이렇게 온전한 공감과 이해에 대한 결핍을 해소하며, 현실에서의 공감과 이해의 가능성 또한 높인다.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펴냄│556쪽│1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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