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지난 2018년 대한민국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조선여성근로정신대는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역시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나고야 지원회’(정식 명칭 :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일원으로서 근로정신대 문제에 투신한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야마카와 슈헤이의 자전적 에세이다. 평범한 일본인이 말하는 ‘인권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보자.
기숙사에 수용된 소녀들은 출신지별로 5그룹으로 나뉘었다. 순례와 복례는 광주에서 온 제5 소대에 소속됐다. 오전 6시에 기상, 조식은 6시 반에서 7시. 된장국, 보리밥, 또는 감자가 들어간 밥에 단무지 절임 등이 나왔다. 7시 30분, 기숙사 앞에 집합해 소대장이 점호를 취하며 중대장에게 보고한 뒤, 중대장이 기숙사 원장에게 보고했다. 집합 시에는 ‘가미카제’라는 글쓰기 새겨진 머리띠를 동여맸다. 기숙사에서 공장으로 갈 때는 대열을 맞췄고 군가를 크게 제창하면서 걸었다. 15~20분 걸렸다.<75~76쪽>
나고야에 도착해보니 아직 모든 곳에 지진이 할퀸 자국이 남아있어서 큰 지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만에 나고야에 다시 와 미쓰비시중공업의 료와 기숙사를 방문했다. 즉시 야마조에 기숙사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장은 중곤을 만나자 정중하게 위로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원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슬픔 속에서 중곤은 그 원장의 말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여동생의 죽음은 이제 틀림없는 사실임을 실감했다. 유골은 이미 광주의 자택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84~85쪽>
한일기본조약 속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해결, 혹은 경제 협력에 관한 일본과 대한민국 사이의 협정’의 제2조 ‘재산‧청구권 문제 해결’의 제1항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양 체결국은 양 체결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 권리와 이익, 또는 양 체결국 및 그 국민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된, 일본과의 평화조약 제4조(a)에 규정한 내용을 포함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확인한다.”<244~245쪽>
『인간의 보루』
야마카와 슈헤이 지음│김정훈 옮김│소명출판 펴냄│360쪽│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