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찬가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리뷰]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찬가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0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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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화자는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Library For Nowhere Books)의 마지막 사서 에드워드 머레이. 그가 도서관이 영원히 문을 닫는 시점에서 도서관의 가장 열정적이고 기이한 기증자 중 한 명인 빈센트 쿠프만(VK)의 희귀 컬렉션을 소개하는 것이 이 소설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VK의 책들은 하나같이 기이한데, ‘어디에도 없는 책들’이자 ‘어디에도 없을 책들’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책들이 현실에서 제작될 리는 없을 것 같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나쁜 의미에서든 좋은 의미에서든 꽤 주목받을 것 같은. 가령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브리엘 영이 미국의 지역들과 그곳에 사는 악령들을 소개하는 책이나 아돌프 히틀러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장서표가 담긴 책처럼 말이다. 

그저 책 소개가 전부다. 그런데 작가가 보르헤스에게서 그 아이디어를 빌려왔다는 ‘존재하지 않는’ 책 소개는 그 자체로 꿈보다 해몽이 훨씬 아름답다. 그리고 그 해몽이 사실은 이 책이 진심으로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령 독자는 그저 책 소개일 뿐인 이 소설을 읽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소개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책 소개’가 꿈이라면 해몽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현석 중앙대 교수가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은 ‘어디에도 없는 인간들을 위한 도서관’이지만 ‘어디에나 있는 인간들을 위한 이야기’다”라고 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즉 이 소설에서 책은 곧 사람이다. 작가는 “조금 식상한 은유지만 사람은 우주다. 사람은 책이다. 한 사람의 깊이는 우주의 깊이와 같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를 오래도록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는 새롭게 계속 쓰여지며 끝나지 않는 책이다. 그리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새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워진다. 그런 책을 읽어 나가는 건 기쁨과 흥분을 주는 모험이다”(88쪽)라고 적었는데, 이로 인해 ‘책=사람’이라고 읽힌다면, 이 소설은 단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책 소개가 아니라 ‘주목받지 못한 사람’ 소개가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머레이가 소개하는 책들은 먼 우주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만, 우리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별들은 사실, 제각기 찬란하게 빛나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잊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단순한 책 소개가 아닌 인간성의 구원이다.

한편, 작가는 이 책을 쓴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이야기를 쓴 2019년에는 작가를 그만두려 생각하고 있었다. 등단한 지 9년이 됐는데 발표한 건 책 두 권뿐이고(그중 하나는 등단작이었다) 단편 청탁은 없고 장편 투고는 몇 년째 거절당하는 중이었다.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을 계속 쓰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래 미뤄두고 있던 이야기 하나만 쓰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읽히지 않을 글을 썼던 숱한 시간이 모여 이 책이 된 것은, 어쩌면 읽히지 않던 VK의 희귀 컬렉션이 모여 이 소설이 된 것과 그 맥락이 같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
오수완 지음│나무옆의자 펴냄│260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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