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세습사회를 뛰어넘는 더 공정한 계획 『사회적 상속』
[책 속 명문장] 세습사회를 뛰어넘는 더 공정한 계획 『사회적 상속』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4.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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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어쩌다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쩌다가 정규직 자격을 매우 희소한 자원처럼 받아들이게 됐을까? 누가 혹은 무엇이 정규직 자격을 노동법에 따른 시민적 권리가 아니라, 매우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으로 간주하게 만들어버렸을까? 정규직 청년들은 어쩌다가 시험을 통해 취득한 자신들의 특수한 직무 수행 권리를, 대단히 보편적인 정규직 자격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 비정규직들이 들어오는 것에 분노하게 됐을까? 더 나아가, 공정의 의미는 어쩌다가 특정한 시험을 통한 특정한 공간에서의 ‘공정 경쟁’으로 줄어들어버렸을까?<18쪽>

2019년 하반기 한국사회를 뒤흔든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 논란이 바로 그 계기였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이슈들 중 시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게 여겨진 것은 역시 자녀교육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보통의 시민들은 처음 접해보는 방식으로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이 교육 받고 경력을 쌓은 데 대해, 일부는 법적으로 위반되는 것은 아니니 문제가 없다고 접어버렸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권력을 이용한 특혜를 편법으로 누려왔다면서 (불)공정 이슈를 제기했다. 이 와중에 정작 상당수의 시민들은, 자신과 동떨어지고 현실감이 없는 사례들을 목도하면서, 한국이라는 같은 공간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확인했다. 사회적 주목을 받았던 텔레비전 드라마 ‘SKY 캐슬’에 비유해, 언론은 한국이 성 안 사람들과 성 밖 사람들로 양분된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19쪽>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불)공정 이슈가 성 안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국 임명 논란과 관련해 가장 첨예하게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은 소위 586세대이든 2030세대이든 관계없이, 성 밖 사람들이 아니라 성 안 사람들인 엘리트 기성세대와 SKY(서울대, 연대, 고대 등 명문대) 대학생들이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불)공정은 바로 그들이 들고 나온 이슈였다. 시비 대상은 대학 입시와 취업을 둘러싼 경쟁 게임에서 조국 전 장관과 그 자녀가 행한 일종의 ‘합법적 반칙’이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 게임 자체가 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성 밖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예 잘 형성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런 식으로 공정은 성 안 사람들의 전용어가 됐다. 한 번은 성 밖 사람들의 진입을 금지하는 무기로, 다른 한 번은 성 안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의 무기로.<20쪽>

『사회적 상속』
김병권 지음│이음 펴냄│228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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