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작하는 풍경, ‘4월 이야기’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이 시작하는 풍경, ‘4월 이야기’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4.06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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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슌지 감독, 영화 <4월 이야기>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4월이다. 따뜻한 봄의 숨결이 몸과 마음으로 스민다. 코로나19로 인해 안팎으로 어지러운 상황이지만, 때에 맞춰 아름답게 만발하는 봄꽃들은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사랑이 시작하는 계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요즘, 사람들은 인파가 몰리는 영화관 대신 넷플릭스와 같은 OTT(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사랑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최근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의 풍경은 울음을 동반하는 비극적 사랑이 아닌,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담아낸 영화들에서 주로 포착되지 않을까?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세상에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현실을 더 고달프게만 할 뿐이니까.

그렇다면 비극이 없는, 사랑의 이미지로만 가득한 멜로드라마가 있을까?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1998)와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가 적절한 주석이 될 수 있겠다. 두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형상을 취하고 있지만, 멜로드라마의 그 흔한 플롯을 따르진 않는다. 그러니까 두 남녀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고 할 때, 영화는 끝난다. 그래서 두 영화에는 사랑의 과정으로부터 기인하는 고통이 없다. 사랑이 시작하기 직전의 싱그러움과 약간의 아련함만 있을 뿐이다.

우선 <4월 이야기>를 살펴보자. 홋카이도에 살던 ‘우즈키’는 도쿄의 어느 대학에 합격한다. 그녀가 그토록 도쿄의 대학에 가고 싶어 했던 이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자신의 첫사랑이 도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즈키가 당도한 4월의 도쿄는 그녀의 마음과 같다. 벚꽃의 생기가 세상을 분홍빛으로 수놓고 있지만, 뭔가 모르게 낯설고 어색한 타향의 공간. 대학 생활에 가까스로 적응해가고 있을 즈음, 우즈키는 드디어 ‘그’를 만난다.

대학가 근처의 서점에서 염원했던 첫사랑을 만난 우즈키. 그 역시 우즈키가 낯이 익은지 먼저 말을 건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마침 비가 억수 같이 내리고, 그는 우즈키에게 빨간 우산을 빌려준다. 우즈키는 그 우산을 쓰고 환희에 찬 표정을 하며 뛰어간다. 관객은 생각한다. ‘아마 우산을 핑계로 두 사람은 또 만나겠지?’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얄궂게도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스틸컷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역시 <4월 이야기>와 유사한 구조를 취한다. 각자의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두 남녀는 우연히 어느 호텔 바에서 만난다.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아름다운 밤거리를 배회한다. 근데 조금 이상하다. 분명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채 하며 지낸다. 그들은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관객들이 들리지 않게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영화에서 홀연히 퇴장한다.

남녀가 만나자마자 끝나는 두 영화 앞에서, 관객은 간질간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잠깐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지는 영화. <4월 이야기>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여느 멜로드라마라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할 그 지점에서, 미련 없이 끝난다. 뒤집어 얘기하면, 두 영화의 미학은 시작하자마자 끝난다는 데 있다.

거룩한 사랑 이야기는 삶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기본 근거이자 규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개 숭고한 희생이 뒤따른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이 그렇고 <타이타닉>(1997)이 그렇다. 그들은 비극을 맞이함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합일을 이룬다. 그야말로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루트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4월 이야기>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그러한 길을 가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멜로드라마인 것. 그래서 오히려 더 깊고 진한 사랑의 향기를 뿜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전부 보여주지 않고도 전부가 되는, 완전한 사랑의 풍경이 바로 두 영화가 가진 미덕이다. “본디 사랑은 시작하자마자 끝난다.” 책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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