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애독가는 없다”... 중요한 건 재미 느낄 ‘계기’
“타고난 애독가는 없다”... 중요한 건 재미 느낄 ‘계기’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4.0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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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서점.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서점.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제각각인 사계절의 매력 중에서도 봄은 유달리 특별한 느낌이다.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것이, 적잖은 파장을 자아내는데,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혹독한 추위 끝에 살갗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온기가 반가워서인 듯도 하고, 앙상했던 가지에 녹음이 내려앉고, 꽃이 피는 시각적 자극이 여타 계절 변화보다 돋보이기 때문인 듯도 하다.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왔단다”하는 느낌이랄까. “이불 속같이 따스”(김유정 『봄봄』)한 봄볕 가득한 ‘인생의 봄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계절, 책 읽기 좋은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봄기운은 ‘동면’했던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마음을 몰랑몰랑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성과의 풋풋한 연애를 꿈꾸게도 하고, 바람은 크지만 선뜻 용기 내지 못했던 무언가에 다시 마음이 가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독서’ 같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 국민독서실태」에 따르면 독서율은 52.1%로 국민 절반 가까이가 일 년에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9,000명 중 58.2%) ‘본인의 독서량이 부족하다’며 독서의 필요성을 인정했는데, 해석해보면 읽고 싶지만 안 읽고 있다는 말. 봄은 다시 독서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대다수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독서. 하지만 ‘독서 노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고된 일이기도 한데, 어떻게 독서를 즐길 수 있을까? 많은 애독가들은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 북큐레이션 회사 바하(BACH)의 하바 요시타카 대표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만화 「드래곤볼」이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드래곤볼」은 <주간소년점프>라는 잡지에 연재됐는데, 잡지가 나오는 토요일이면 요시타카(당시 초등학생)를 포함한 아이들은 ‘점프 할머니’(점프 잡지를 파는 슈퍼집 할머니란 뜻)가 운영하는 슈퍼를 향해 경쟁적으로 내달렸다. 잡지 수량이 적어 잡지를 손에 넣는 건 소수였는데, 이 때문에 누군가는 엄마 차를 타는 반칙(?)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만 점프 할머니는 나름의 판매 원칙이 있었으니 바로 “갖고 싶은 책은 제 발로 찾아와야 한다”는 것. 점프 할머니는 엄마 찬스를 배제하고 스스로 찾아온 요시타카에게 잡지를 쥐여줬는데, 그 일은 요시타카가 직접 서점을 찾는 계기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북큐레이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요시타카는 책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에서 해당 일화를 전하며 “그때 할머니가 한 말은 책을 찾는 내 작업의 기반이 됐다”고 술회했다. 책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경험이 독서를 지속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평론가이자 다독가인 이동진 역시 그런 경험을 중시한다. 그는 책을 읽지 않고 구매만 해도 독서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고 서점에서 사서 책장에 꽂는 것까지 책과 관련된 모든 순간을 샅샅이 사랑한다”며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 부분만 찾아 읽는 것, 그 모든 것이 독서”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어떤 계기를 기대하며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사서, 책장에 꽂는 모든 행위가 독서라는 것. 독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애독가의 공통된 주장이다.

때론 지적 허영심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동진은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에서 “‘있어 보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 지적인 허영심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문장에 용기를 얻은 A(37)씨는 “읽은 사실을 인증해 뽐내고 싶은 마음에 『삼국지』 열권을 독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쁘게 여겨지는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 성취를 얻은 사례인 것.

이런 시도가 계속되다 보면 가슴을 ‘탁’하고 치는 문장이나 표현을 만나기 쉽고, 그럼 그 ‘계기’로 해당 작가의 책을 섭렵하거나, 책에서 소개한 다른 책으로 독서 폭을 넓혀나가며 애독가의 길로 들어설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한 달에 20권 이상의 책을 읽는 B씨(27)는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인용구를 읽고 해당 인용구가 적힌 소설(김영하의 『퀴즈쇼』)을 읽게 됐다”고 전했다. 해당 인용구는 “그들은 어려서부터 경쟁 체제에 냉혹하게 내몰렸다. 그 결과 ‘죽을 만큼’ 노력해야 ‘겨우’ 평범하게 살 수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중략) (요즘 20대는) 실현 가능한 꿈만을 꾸며 ‘가성비’가 만족스러운 일을 우선으로 한다. 지금의 노력이 먼 훗날의 결실로 돌아올 거라는 말을 믿지 않고,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더 중시한다”는 내용.

때로는 시(詩)가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때 자신을 좋아했던 후배를 10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누나! 왜 이렇게 늙었어”라는 울부짖음에 마음이 깎인 경험을 지닌 김이경 작가. 그는 책 『시의 문장들』에서 “왜 이렇게 늙었느냐고? 너만큼이나 정직한 시간 때문이지 뭣 때문이겠니”라고 말하며 울라브 H. 하우게의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란 시를 인용했는데, 그런 상처(?)가 낳는 공감은 많은 이들에게 독서의 재미를 깨닫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찾아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으로 외출이 어려워, 자발적으로 감금(책 감옥)되기 좋은 시기에 독서와 사랑에 빠지는 ‘계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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