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마음이 아프면 서점을 찾아보세요
[니가 사는 그책] 마음이 아프면 서점을 찾아보세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01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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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요즘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독자 마음의 ‘치유’를 목표로 한다. 그런데 치유의 방식에도 유행이 있다. 최근에는 지난 2018년에 출간돼 올해 그 인기가 역주행한 정신과 의사 정혜신의 베스트셀러 『당신이 옳다』의 치유법이 대세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옳다』의 중심 내용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정혜신은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치유법보다, “당신 지금 마음이 어때요?”라는 질문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환자가 우울증이면 우울증약을, 불면증이면 그저 수면제를 처방해왔던 정혜신은 세월호 참사 와 같은 우리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을 마주하며 무기력해졌다. 단지 증상에 대한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방식으로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속속 백기를 들 무렵, 정혜신은 자원봉사자들이 일으키는 변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무 전문성도 갖추지 않은 이들이 단지 피해자들의 옆에서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나’가 또렷해져야 그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정혜신의 치유법은 심폐소생술이다. 심장이 뛰지 않는 사람에게 다른 곳이 아닌 오직 심장만을 압박하듯이,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는 “존재의 핵심인 감정에 대한 주목과 안부를 묻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인지하게 하고, 결국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찾게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신 지금 마음이 어때요?” 그런데 요즘 치유를 이야기하는 베스트셀러들도 『당신이 옳다』의 이 질문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좋은 글귀로 사람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북 테라피스트 전승환은 베스트셀러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그 슬픔을 직면하고 위로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때 책 속 문장이 다가와 손을 건네며 말을 거는 겁니다. 자기감정과 마음에 온전히 집중해보라고, 내가 곁에 있어 주겠다고 말이지요.” 이 책에서 저자는 책의 역할이 곧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책 속 좋은 문장들을 통해 독자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1cm 다이빙』은 좀 더 직접적이다. 자신의 인생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두 저자는 ‘1cm 다이빙’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복들을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스마트폰보다 재미있는 것이 있나요?” “30초 안에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면 뭐 할 거예요?”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뤄왔던 거 있나요?” 등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두 저자는 매 장의 말미에 독자에게도 동일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자신의 마음에 주목할 수 있게 한다. 

최은영의 베스트셀러 소설집 『쇼코의 미소』의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자기감정의 밑바닥에서 그 감정의 실체를 대면하고 변화하는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주인공 소유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이 사실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고 고백하며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좀먹어가던 꿈을 버린다. 또 다른 주인공 쇼코의 감정은 ‘편지’라는 상징물로 나타난다. 편지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쇼코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후 소유의 방문에 자신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편지를 통해 일어나게 된다. 감정에 충실함으로써 인생이 바뀐 두 여자의 이야기는 독자 역시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게 한다. 

이 외에도 엄마와 할머니가 공공장소에서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하고 칼에 찔릴 때조차 무감각했던 윤재가 감정을 찾아가는 소설인 『아몬드』와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며 잘 웃고, 잘 웃는 것이 진정 강함이라고 말하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독자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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