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3.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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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중략)//입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이상화 시인은 일제에 빼앗겨버린 조국에서 봄을 노래했다. 조국을 빼앗긴 아픔이 마치 봄조차 빼앗겨버리기라도 한 듯 가슴이 찢어진다고. 그러나 시인은 한편으로, 빼앗긴 들일지라도 언젠가는 봄이 온다는 희망을 전했다.   

산에 들에 꽃이 폈으나 쉽사리 봄을 맞이하지 못하는, 코로나19에 봄을 빼앗겨 버린 듯한 오늘, 이 시가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는 어째서 감염병에 봄을 내어줬을까. 최근 50년간 신종 감염병이 급격히 증가했고, 앞으로는 창궐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들려온다.   

아무리 봄의 회복이 요원해 보일지라도, 희망은 찾을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피(知彼). 우선 감염병이 우리 땅에 닿게 된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감염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첫째로 온난화와 전염병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급격한 지구 기온 상승으로 인해 빙하가 녹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고대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학술논문 사이트 ‘바이오 아카이브’에 소개된 미·중 공동연구팀의 2015년 연구결과가 눈에 띈다. 연구팀은 1만5000년 전에 형성된 빙하에서 얼음 샘플을 채취했는데, 그 안에서 발견된 32종의 바이러스 중 28종은 인류가 알지 못하는 신종 바이러스였다. 빙하가 녹아서 생긴 바이러스가 창궐한 실제 사례도 있다. 지난 2016년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12세 목동과 순록 2,300여 마리를 죽인 탄저균. 전문가들은 이 감염병이 이례적인 고온현상으로 인해 빙하가 녹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역시 기후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는 한편,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계 파괴를 신종 감염병의 등장 이유로 꼽았다.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그동안 접하기 쉽지 않던 야생동물을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감염병을 얻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깊숙한 숲의 동굴에 사는 박쥐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해진 이유는 인간이 박쥐를 잡기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거대 가구 기업이 벌목을 위해 아프리카의 숲을 들쑤시고, 그 과정에서 사냥꾼들이 깊은 숲에 들어가 박쥐를 접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감염병 창궐 이유로 지적한 것은 빈부격차다. 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져만 가는데,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위생과 보건을 위해 힘쓰지 않는다. 따라서 가난한 지역에서 감염병이 발생하고, 이 감염병은 과거보다 활발해진 국가 간 이동으로 인해 빠르게 확산한다. 한편, 프랑스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과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역시 책 『초예측』에서 국가 간 빈부격차의 확대로 인해 인류가 직면할 실존적 위기에 깊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제부터 지기(知己). 신종 감염병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았으니 이제는 우리를 알아야 한다. 인류는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 부국과 빈국의 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일단 국가적인 대처는 불합격이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아무리 강대국이더라도 독자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협조적이지 않다. 각국의 정치인들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보호나 국가 간 격차를 해소할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감염병과 같이 확산해 있는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로 인해 세계는 언제든지 문을 걸어 잠글 준비가 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떠한가. 멀리 떨어진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는 피부로 와닿지 않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되겠는가. 그런데 잠깐, 우리가 계속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먹고 살기’는 바쁜 것을 넘어 아예 어려워지지 않을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우리는 그 봄을 지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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