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타이타닉·밀양’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타이타닉·밀양’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3.29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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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러시아 출신의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는 세계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키노 아이’(kino eye : 카메라의 눈)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카메라의 탁월한 지각능력을 예찬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카메라의 눈은 인간의 눈보다 훨씬 완전하게 세계를 인지합니다.

‘완전하게’ 세계를 인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김호영은 책 『영화이미지학』에서 “우리의 눈은 아주 조금 그리고 매우 불완전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세계를 보다 깊이 꿰뚫어보고 다양한 시각적인 현상을 탐색하고 기록하기 위해서는 기계의 눈, 영화카메라가 필요하다”며 ‘키노 아이’에 관한 베르토프의 사유를 정리합니다.

키노 아이는 인간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포착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카메라는 인간이 가닿기 어려운 거리와 위치에서 세계를 지각합니다. 이러한 베르토프의 사유는 짐멜이 지적한 ‘이미지 홍수의 시대’, 즉 산업화에 따른 대도시의 등장으로 거리의 휘황찬란한 빛에 압도된 인간의 눈(지각능력)이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진단과 연결됩니다.

짐멜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대응해 세계를 인지하는 데 점점 ‘이성적 태도’를 고수합니다. 이러한 이성적 태도는 ‘둔감증’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 김호영은 “둔감증이란 본질적으로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증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둔감증에 걸린 대도시인은 사물의 차이들이 지닌 의미나 가치, 나아가 사물 자체를 공허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증상에 급속도로 빠져들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도시를 살아가는 인간은 언제나 ‘화려한 볼거리’에 노출돼 있습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인간은 자신의 눈을 쉬게 해줄 공간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가 거리의 전광판입니다. 무수한 볼거리로 인해 인간의 눈은 점점 피로함을 느끼고,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다 이성적인 태도를 지니려고 노력합니다. 그 태도가 결국엔 둔감증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게 짐멜의 논의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베르토프는 카메라의 눈이 가진 능력을 더욱 예찬합니다. 둔감해진 인간의 눈은 사물의 가치를 제대로 지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에 비해 카메라의 눈은 그야말로 전지전능합니다. 아마도 베르토프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인간의 눈과 달리) 완전하고 정확하게 포착하는 카메라의 지각능력에 상당히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제임스 캐머런 감독, <타이타닉> 스틸컷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1997)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아닐까합니다.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가 배 난간에서 팔을 벌리고 드넓은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때 카메라는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으로 인물 주변을 유영합니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점의 변화와 움직임은 인간의 지각능력을 초월합니다. 키노 아이 특유의 자율성과 운동성을 맛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또한 키노 아이는 시점을 인간(혹은 하나의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물질에 부여합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글’은 필요하다」라는 글에서 “현실에서는 그저 길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가 스크린 속에서는 그 어떤 서사적 기능 없이도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동을 준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이 역시 키노 아이가 하잘 것 없는 돌멩이 하나에도 시점을 부여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 <밀양> 스틸컷
이창동 감독, <밀양> 스틸컷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아들을 잃고 망연해하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서서히 카메라는 남루한 땅을 비춥니다. 이 척박한 땅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키노 아이는 지금 이 순간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물질에 골고루 시선을 부여합니다. 햇빛, 그늘, 바람, 흙, 못 쓰게 된 물건들까지. 관객은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화면을 훑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정에 마음을 빼앗긴 채 말이죠.

우리가 흔히 ‘영화적이다’라고 표현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중 하나는 키노 아이에 의한 시선의 ‘무한한 자유로움’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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