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52가지 궁금증으로 본 우리 기록문화의 발자취 『우리 책과 한국사 이야기』
[책 속 명문장] 52가지 궁금증으로 본 우리 기록문화의 발자취 『우리 책과 한국사 이야기』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3.24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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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대장경을 새긴 목적은 책으로 찍어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장경 조성사업이 끝난 후에는 대장경 인쇄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왕조가 바뀐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즉, 승려의 학술연구 및 신앙의 차원에서 여러 차례 대장경을 인쇄한 것입니다.<21쪽>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은 활자문화를 최초로 개척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북송 시대에 필승이 만든 교니활자(진흙활자)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진흙은 내구성이 약해 활자로서 실용화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활자문화를 시작한 나라는 북송이 아니라 고려라고 해야 타당한 역사인식일 것입니다.<27쪽>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경연에서 사용할 책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대학』과 같은 유학 서적과 역사서를 택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왕들이 책을 깊이 탐독하고 출판에 힘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38쪽>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왕실이나 조정에서 종이 조달이 어려워 필요한 서적을 발간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출판사업을 한 것도 고려 종이의 질이 매우 우수했던 것이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당시 고려에서는 종이를 중국에 수출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56쪽>

이러한 서적 외판업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는데, 조선 후기 곧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외판원이라 하지 않고 ‘책거간(冊居間)’이라고 불렀지요. 책거간에 관한 기록은 18세기 후반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세 번이나 다녀온 박제가의 『북학의』에 나옵니다.<63쪽>

『실록』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되었다고 자랑하기 이전에, 현대 우리 정부의 기록이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국가 기록이 없으니 후세 역사가가 현재 역사를 쓸 때, 다시 야사(野史)나 외국 문헌 또는 신문, 잡지 등의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110쪽>

『우리 책과 한국사 이야기』
부길만 지음│유아이북스 펴냄│276쪽│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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