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독립출판물들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세상에 이런 독립출판물들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3.24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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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스틸컷  [사진= JTBC 홈페이지 캡처]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드라마로도 방영 중인 인기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독립책방을 운영하는 은섭은 독특한 독립출판물들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오늘의 입고 서적: 『사물의 꽃말 사전』 이말리 저
1인출판물 『사물의 꽃말 사전』을 입고했다. 작가가 오랫동안 구상해서 글 쓰고 사진 찍는 작업을 해왔다고 함. 처음 위탁 판매 문의를 받았을 때는 사물의 꽃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는데, 꽃마다 꽃말이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에게 어울리는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라는 상상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 행운이라면 카메라의 꽃말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 이말리씨는 ‘찰나’라고 써놓았다. <29쪽>

#오늘의 입고 서적: 『죽지 않고 노숙』 김성찰 저 
1인 출판물 『죽지 않고 노숙』을 입고했다. 저자는 삼 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대부분의 잠을 거리에서 잤던 경험을 토대로, 도시마다 안전하게 노숙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함. 경기도 일산의 어느 공원은 벽돌 이글루 모형이 있는데, 담요를 들고 들어가면 밤새 칼바람을 피할 수 있다고. 육지뿐 아니라 제주도와 마라도까지 총망라해 노숙할 만한 장소를 답사해놓았다. (이걸 답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61쪽>

물론, 은섭이 소개한 독립출판물을 실제로 살 수는 없다. 작가의 상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도 없다. 이렇게 개성 있는 독립출판물은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다. 전국의 독립책방지기로부터 독립출판물을 추천받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식으로 구성해봤다. 

#정용희 어나더블유 대표 추천 서적: 『알바의 품격』 정나영 저 
30일간의 지방의회 아르바이트 일지. 퇴사 후 백수로 지내다가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 업무보조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의원들의 모습을 시니컬하게 표현함. 작가는 정말 적나라하고 냉소적으로 의원들과 함께한 일상을 그려내는데, 독립출판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너무 많아 매일 일지를 쓰기로 했다고. 70페이지 내외로, 일기 형식으로 돼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 시기에 읽을 책으로도 적합하겠다. 아, 이 책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맛집들이 등장한다. (장르를 맛집 보고서라고 해도 될 정도.)

『알바의 품격』 책 표지

#김소정 엠프티폴더스 대표 추천 서적: 『미니박스』 시리즈, 유치키치센치 저
이걸 책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독립출판물. 그림 그리는 독립출판물 작가 네 명이 유치키치센치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세상에 낸 작품인데, 오직 엠프티폴더스에서만 살 수 있었다고 함. 이제는 우리 서점에서도 살 수 있으니, 전국에 『미니박스』 시리즈를 파는 곳은 단 두 곳뿐이라는 말씀(자랑 맞다.). 성냥갑 사이즈의 상자에 직접 그린 그림들이 담겨 있는데, 각각 박영은 작가의 ‘꽃그림 박스’, 롱담 작가의 ‘엉뚱한 옷장’, 방윤희 작가의 ‘birds’, 소소하루 작가의 ‘candy girl’이다. 그런데 이걸 꼭 팔아야 하나. 소장하고 싶다.    

『미니박스』 시리즈 [사진= 엠프티폴더스]

#익명의 독립책방지기 추천 서적: 『꽃도감』 『동물도감』 토끼풀 저
일곱 살 아이가 꽃 그림, 동물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엄마가 집에서 책으로 만들었다고 함. 이 책도 희소가치가 있는데, 전국을 통틀어 7~8곳에 유통된다고 한다. 손으로 만들었으나 만듦새도 괜찮고, 아이가 그리고 엄마가 만드는 시스템도 좋고, 인쇄소를 통하지 않고 집에서도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다른 책들이 식당에서 먹는 밥이라면 이 책은 집밥이 아닐까. 갑자기 이 가격에 팔아도 되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식당은 어디에나 있지만, 집밥은 막상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으니. 

『꽃도감』 『동물도감』

#낫저스트북스 책방지기 추천 서적: 『식상하고 따분하고 진부한 치정극』 서동찬 저 
소설가인 저자가 자신의 책이 이북(ebook)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해 새로운 소설을 낫저스트북스 책방지기와 함께 종이책으로 만들었다고 함. 200페이지 정도고, 단편 열 편이 담겨 있다. 굳이 장르 구분을 하자면 스릴러(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몰입도가 높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좋음. 한 단편(스포일러라서 제목은 말하기 어렵고)이 인상 깊은데,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됐던 인물이 가해자가 되고, 악인일 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선한 사람이 되는… 그런 편견을 깨부수는 작품이었다. 아, 이 책도 유통되는 곳이 열 곳을 넘지 않음. 우리 책방이 이렇게나 대단합니다.       

『식상하고 따분하고 진부한 치정극』 책 표지

이 외에도 한 책방지기는 현직 여성 경찰이 자신의 일을 생생하게 기록한 『경찰관속으로』(원도)를, 다른 책방지기는 물을 무서워하던 작가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기록한 수영장 일지 『스무스』(태재)를 추천했다. 『경찰관속으로』는 솔직하며, 『스무스』는 뭔가를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날씨가 좋으면 독립출판물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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