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귀향‧아이 캔 스피크’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귀향‧아이 캔 스피크’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3.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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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이미지를 생산하는 카메라는 늘 특정한 ‘시공간’에서 특정한 행위를 하는 ‘인물’을 포착합니다. 그러한 시공간과 인물을 카메라로 ‘재현’(再現)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에는 태생적으로 관음증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가령 갑자기 누군가가 여러분을 카메라로 찍으려고 할 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대개 시선을 회피하거나 얼굴을 가리진 않나요? 여자 화장실 등에 설치된 불법 촬영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시선의 폭력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음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카메라의 주인이 설사 그런 의도가 없었다할지라도 말이죠.

‘재현의 윤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가 아무리 사실이 아닌 허구일지라도, 우리는 영화 속 세상과 인물을 함부로 다루거나 재현해선 안 됩니다. 즉 영화의 내용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올바르더라도, 그것을 올바르지 않은 형식으로 담아내면 영화는 위험해집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는 논문 「한국 독립영화들의 최근 경향에 대하여」(2011)에서 “타자를 구체적인 개인으로 재현하는 일은 그래서 늘 어려우며 이 오류는 얼마간 근본적인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구석이 있다”며 “영화가 타자를 재현할 때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징후로, 어떤 모순으로 영화 내에서 현상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결국 타자를 재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고통에 처한 타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은 굉장히 난해한 작업입니다. 삶의 고통과 실존의 문제에 허덕이는 인물이 스크린에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대개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조정래 감독, 영화 <귀향> 스틸컷

조정래 감독의 <귀향>(2015)은 개봉 당시 위안부 피해자를 재현하는 방식에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주로 재현의 윤리가 전무하다는 게 이 영화의 맹점이었는데, 앞선 언급처럼 재현의 윤리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찍을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됩니다.

<귀향>의 카메라는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을 노골적으로 전시합니다. 피해자들이 동시에 강간당하는 장면을 직부감(내려찍기)으로 담은 장면. 혹은 일본군의 시점숏으로 피해자를 강간하는 장면 등은 영화로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겠다는 감독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매우 부적절합니다.

자크 리베트가 비평문 「천함에 대하여」에서 타자의 고통(혹은 비극의 역사)을 재현하는 영화의 ‘관음증’과 ‘포르노그래피’를 염려한 것은 영화이미지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여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어떤 방식으로 스크린에 투영되는 가의 문제는 재현의 윤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귀향>은 윤리적(내용)이지만 동시에 비윤리적(형식)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는 어떻게 재현해야 할까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요?

김현석 감독,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는 위안부 소재 영화 중 재현의 윤리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종래의 위안부 소재 영화가 피해자의 ‘피 흘리는 고통’에 천착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는 피해자의 ‘일상적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피해자를 한명의 인간으로서 조명한 것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위안부 피해자 옥분(나문희)은 마을의 온갖 문제에 참견하는 등 이웃에게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로 인식됩니다. 이는 이제껏 우리가 보아온 피해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감독은 피해자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도 그녀가 살아온 지난한 삶을 관객의 마음에 고스란히 안기는 지혜로운 연출을 선보입니다.

지난해 개봉한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2019)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은 김복동 할머니를 피해자 김복동이 아닌 인권 운동가 김복동의 모습으로 그려내며 그녀를 능동적인 삶의 단독자로 포착했습니다.

우리가 허구라고 생각하는 영화 속 세상과 인물은 어쩌면 어딘가에 실존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스크린에 옮겨와선 안 됩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찍지 않을 것인가’ 혹은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골몰하는 것. 이게 바로 재현의 윤리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감독의 태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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