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작은 빛’ 조민재 감독‧곽진무 배우 “영화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요”
[인터뷰] 영화 ‘작은 빛’ 조민재 감독‧곽진무 배우 “영화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3.20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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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재 감독(왼), 곽진무 배우(오) [사진=오재우 기자]

시인이자 가수인 레너드 코헨의 노래 ‘Anthem’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

<작은 빛>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지만, 그곳으로부터 아스라한 빛이 새어나오는 영화다. 자주 길을 잃게 하는 세상. 정처 없이 흐르는 존재. 그러한 세상과 존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영화. 그 모든 것이 같은 맥박 위에 놓일 때, 관객은 전율한다.

삶과 죽음, 연민과 증오, 의미와 무의미의 자장 안으로 관객을 얽어매는 것. <작은 빛>의 미학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저 보여준 뒤 말없이 질문하는 영화.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과 곽진무 배우는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어나갔을까.

조민재 감독(오), 곽진무 배우(왼) [사진=오재우 기자]

Q. <작은 빛>이 서울독립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에 초청돼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A. :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 관객과 소통하는 게 목표였다기보다 저 자신의 치유에 관한 고민을 더 많이 했어요. 저의 자전적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뭔가 자꾸 설명하려고 하기 보단, 제가 살아온 한 시기를 보여주고 그것을 치유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래서 영화가 많은 사람에게 공개된다는 게 겁이 났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죠.

: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 작품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어요. 다른 하나는 감독님의 연출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감흥이에요. 직감적으론 알고 있었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웃음)

Q. 진무(곽진무)는 의사로부터 뇌수술 후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찍는다. 진무의 카메라는 가족들의 현재와 과거를 환기하고, 종국에는 가정 폭력을 일삼았던 죽은 아버지의 빈자리로 향한다. 시나리오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A. : 직장을 관두고, 한 1년 정도 쉬고 싶었어요. 평소에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제가 직장 다니면서 영상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문득 ‘영화를 찍어볼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막연하게 노동과 관련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시나리오를 써나갔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제가 고향이 제주도거든요, 근데 돌아갈 무렵에 폭설이 내려서 꼼짝없이 공항에 갇히게 된 거예요. 사촌형 집이 그 근처라 며칠 머물렀는데, 사촌형이 아버지 산소를 보고가라고 하더라고요. 중학교 때 마지막으로 가고, 성인이 되고나서는 처음 갔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아버지를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그것을 글로 정리하다보니까 노동영화보다 이 이야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기엔 이게 맞겠다고 생각을 정리한 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Q.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작업했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했는지?

A. : 이건 좀 해명을 해야 하는데, 제가 당시 준비하던 일을 하려면 장편영화 스태프 경력이 필요했어요. 그것 때문에 현장에서 기자재를 나르는 등 제작부 일을 겸했어요. 근데 감독님이 고맙게도 제가 시나리오에 영감 준 부분 있다고 판단했는지 각본에 이름을 올려주셨어요. 저도 영화가 이렇게 잘 될지 모르고 (웃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얼떨떨했죠.

: 이렇게 까지 솔직하게? (웃음)

: 연기자와 감독이 시나리오나 연출에 관해서 여러 말을 주고받잖아요? 감독이 아무리 배우에게 영향을 받아도 이름을 올려주는 경우는 없는데,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 사실 영화를 준비할 때, 어느 누구도 응원해주지 않았어요. 곽 배우님만이 “시나리오 좋아. 가도돼. 괜찮아”라고 말해줬어요. 제겐 유일한 믿음이자 버팀목이었죠. 영화를 관둬야하나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Q. 회사 퇴직금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들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A. : 사실 돈이 아깝지 않았어요. 이건 여담인데, 제작 지원이라는 게 있는지 몰랐어요. (웃음) 당연히 다들 자기 돈으로 영화 찍는지 알았어요.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주위에서 “원래 제작 지원 받아서 찍는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제작 지원을 기다려서 내년에 찍는다는 건 좀 무리였어요. 저한텐 시간이 딱 1년 밖에 없었거든요. 생활비를 소분해놓은 게 있어서 촬영을 무작정 미룰 순 없었어요. 여행 많이들 가시잖아요? 영화로 여행 갔다 온 기분이에요.

조민재 감독 [사진=오재우 기자]

Q. <작은 빛>은 진무가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자신의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촬영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인물이 무언가 촬영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A. : 저는 영화를 볼 때,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엔딩 시퀀스에서는 영화 안에 있던 인물들을 현실로 보내줘야 하고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진무가 찍은 바깥 풍경을 보여주고, 이어서 그 풍경을 찍고 있는 진무의 모습까지 보여준다는 건 분명 영화에 대한 영화, 메타시네마적인 요소인 거죠. <작은 빛>은 찍고 있는 사람을 찍고 있는 영화예요.

이런 구성이 왜 필요했냐면, 저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작은 빛>은 전체적으로 진무가 자신의 카메라를 통해 가족들을 찍어나가고, 동시에 그런 진무를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방식으로 조각돼 있어요. 진무가 찍지 않을 땐, 감독이 무언가를 찍고 있다는 걸 끊임없이 드러내는 영화예요. 영화 속 진무의 카메라와 영화 바깥 감독의 카메라가 겹쳐지면서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예요.

Q. 인물이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카메라는 얼마간 빈 풍경을 주시한다. 독특한 호흡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A. : 쉽게 말하면 공간이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진무가 어머니의 집을 담 넘어서 들어가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에요. ‘어머니의 집’이라는 공간 안으로 진무가 파동을 일으키며 들어가는 거예요. 공간은 그대로 있고, 인물만이 그 공간을 반복적으로 출입하는 거죠. 인물이 나가도 그 공간의 시선이 계속 남아 있는, 그 순간의 정서를 카메라로 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작은 빛>은 누군가의 소중했던 공간을 지키는 영화예요.

Q. 비슷한 맥락에서, 진무를 만나고 난 뒤에 가족들이 각자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굳이 보여준다. 어떤 의도였는지?

A. : 제가 떠나도 이 사람들은 계속 여기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 일상이 참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가족들이 매일 다니는 길도 고맙고, 일터도 고맙고. 한 번쯤은 카메라가 그들의 일상을 따라가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이 이 공간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면서 살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담아내고 싶었어요.

조금 덧붙여 설명하자면, 인물을 영화 안에 가둬둔다기보다 영화를 잠시 스쳐지나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인물이 영화 속에 영원히 머무는 게 아니라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거죠.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순간, 인물이 영화를 잘 스쳐지나갈 수 있게끔 하는 것. 이게 저의 영화적 태도예요.

Q.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진무가 형광등 스위치를 반복적으로 끄고 켜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일상이 차례로 나열되는 장면이다.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영화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A. : 어느 날 강둑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는데, 집집마다 형광등 불빛이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게 뭔가 영화 스크린 같았어요. 저 네모난 스크린(창문)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겠다, 저 네모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내 영화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말씀해주신 장면은, 이를테면 ‘빛-어둠’의 반복이거든요. 그 반복이 영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영화가 빛의 예술이잖아요? 깜빡깜빡하는 그 운동성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 이런 질문 받으면 연출자로서 되게 기분 좋을 거 같아요. (웃음) 제가 감독님과 동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이 질문이거든요. 다들 이 시퀀스를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연출자로서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을 거 같아요.

: 사실 되게 단순한 거예요.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야, 그게 뭐냐 학생이 편집한 것도 아니고”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웃음) 부연하자면, 형식도 중요하지만 감정도 같이 가야해요. 영화라는 게 결국 빛이고, 빛을 만들어내는 과정인 거잖아요? 진무가 형광등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고, 그 빛이 가족들의 삶으로 스며들어가길 바랐어요.

Q. 어머니가 진무에게 갑자기 화내는 장면이 있다. 그때 어머니의 감정이 되게 독특하게 다가왔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가끔씩 이유 없이 화낼 때가 있었어요. 물론 이유가 없진 않았죠. 제가 밥을 잘 안 먹거나 그러면 화를 냈는데, 사실 그게 이유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뭔가가 계속 쌓이다가 거기서 터진 거겠죠.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화낼 때 뭔가 되게 낯설게 느껴지면서 한명의 인간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엄마도 사람이구나, 개인이구나, 라는 걸 인지하게 돼요. 어머니가 진무에게 화내면서 “네가 날 알아?”라고 소리치는데 바로 이 때문이죠.

곽진무 배우 [사진=오재우 기자]

Q. 촬영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자율권을 많이 줬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

A. : 자율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배우가 영화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거기에 맞는 연기를 하도록 판을 잘 만들어주신 거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엔딩 시퀀스를 찍을 때 진무가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는 장면이 필요했는데, 그 장면을 현장에서 제대로 못 찍어서 추가 촬영을 했어요. 당시의 습하고 무더운 느낌을 이어가기 위해 혼자 막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땀을 만들어 냈죠. (웃음)

Q. 진무가 아버지의 양복을 입고 그에 관한 기억을 털어 놓는 장면이 아프게 다가왔다. 촬영 당시 어땠는지?

A. :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대체로 자신만만했어요. 영화에 대해 감독님과 많은 소통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저도 나름대로 준비를 잘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 장면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진무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안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면인데, 제겐 미지의 영역이었죠. 뭔가 큰 봉인이 풀린 듯한 느낌이랄까요? 어쨌든 미워만했던 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자 할 때의 생경함, 불안함, 무서움. 그런 것들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Q. 들뢰즈 책을 언급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평소 들뢰즈 책을 즐겨 읽는지? 영화를 찍으면서 특별히 참고가 됐던 책이 있다면?

A. : 들뢰즈 책을 언급한 건 정말 지적 허영심이죠. 굳이 말씀드리면, 들뢰즈 책을 읽으면서 ‘영화가 이런 메커니즘으로 까지 확장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외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웃음)

영화를 찍으면서 참고가 됐던 책은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에요. 이 소설 역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바탕이 된 책이에요. 『외딴방』에서 구체적인 한 장면을 가져왔다기보다는 책을 쓰는 신경숙 작가의 시선과 정서를 가져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소설이 전반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가까이 있는 듯한, 그런 양가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제목이 ‘외딴방’이에요. 저는 <작은 빛>이 그런 느낌의 영화이길 바랐어요.

창작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 역시 『외딴방』이에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장 생활을 했는데, 신경숙 작가 역시 그랬죠. 힘들게 공장 일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위로와 격려를 준 소설이에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 제가 요즘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게 집안에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는 거예요. 2년 동안 실천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원하는 만큼 버리지 못했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들 빼고는 다 버리고 싶어요. 그런 식으로 뭔가를 계속 덜어내는 삶을 꾸려가고 싶어요.

: 저는 영화 자체를 좋아해요. 영화를 잘 만들어서 스타가 돼야겠다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요. 연출만 해야 된다는 생각도 없어요. 촬영도 하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고, 비평도 써보고 싶어요. 지금은 <작은 빛>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일종의 제작 노트인데,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나 비평을 모아서 스태프들과 나눠 볼 예정이에요.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아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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